[팀장 칼럼] ‘유연성’ 요구되는 尹정부 2년 차 경제 청사진

윤희훈 기자 2022. 11. 30. 1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새해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4일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내년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종전 전망 대비 0.4%포인트(P) 하향한 1.7%로 제시했다. 매 분기마다 전망을 수정하는 한은이 한 번에 전망치를 0.4%P나 낮춘 것은 전례가 없다. 그만큼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한 시야가 급격하게 흐릿해졌다는 의미다.

보다 충격적인 전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나왔다. OECD는 내년과 내후년 GDP 성장률을 1.8%와 1.9%로 전망했다. 2년 연속 1%대 성장은 한국 경제 역사에 한 번도 없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심지어 노무라증권은 내년 우리나라 경제가 -0.7%, 역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1%대 저성장 전망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내년에도 3% 중후반대로 전망된다. 올해 5%대 물가와 비교하면 낮지만, 여전히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1%대 성장으로 수요가 둔화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을 유발되는 구조적인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세계가 저성장과 인플레가 동시에 진행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금의 고물가 상황은 장기간 계속된 통화 완화 정책과 확장적 재정 운영으로 응축된 잠재력이 공급발 이슈를 만나 화산 폭발처럼 터졌다. 물가를 잡기 위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고강도 통화 긴축을 펴고 있지만 뚜렷한 꺾임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고령화로 인한 세계적인 생산가능인구 감소, 탈세계화와 패권 경쟁, 기후변화의 영향이 ‘인플레 시대(the age of inflation)’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11·12월호’에서 “공급발 충격이 계속되면서 중앙은행과 정책 입안자들이 고려하지 않은 장기적인 변화에 직면할 것”이라며 “물가 상승 요인 중 많은 부분이 사라지겠지만, 초저물가 시대는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저성장과 인플레가 공존하는 경제 환경은 거시 경제 정책에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다.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경제가 장기 침체로 빠지지 않게 하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인플레 확산 위험이 여전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통화·재정 완화 정책을 구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경기 침체 장기화가 예상되는 시기에 긴축 일변도 정책을 지속하기도 어렵다. 균형감과 유연성 있는 정책 운용이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인플레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은 저소득층에 더 가혹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소득은 3% 증가했지만, 소득 하위 20%(1분위) 소득은 1% 감소했다. 반면, 소득 상위 20%(5분위)는 평균 이상(3.7%)의 소득 증가를 누렸다. 인플레로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이 국내외 금융기관 임직원과 주요 경제 전문가 72명에게 실시한 서베이에 따르면, 60%가량이 ‘1년 이내에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 악화에 따른 부실 위험 증가 ▲금융기관 대출 부실화와 우발채무 현실화를 핵심 리스크로 지목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저축은행, 증권사로 돈이 돌지 않는 자금시장 상황은 누적된 긴축 효과로 인한 금융 불안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때, 정책이 ‘도그마’에 빠지면 안 된다. 물가 안정이라는 대의(大意)를 쫓더라도, 우리 경제의 취약점이 시스템적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유연한 정책 운용이 필요하다. “한은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으로부터는 그렇지 않다”는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말이 미국 금리 인상의 속도를 무조건 추종하겠다는 의미로 활용돼선 안 된다.

재정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정상화하겠다는 ‘건전 재정’ 의지가 족쇄가 돼선 안 된다. 특히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경우,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피해서는 안 된다. 집권 2년 차에 접어드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청사진에서 이런 유연한 정책 운용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윤희훈 정책팀장]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