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윤 대통령의 '자유'는 자유로운가

이훈성 2022. 11. 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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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부족 
시장과 기업의 자유 강조하지만 
진정한 '자유주의' 실현과는 거리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통 해외 자문위원과의 통일대화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이 꼭 위대한 사상가일 필요는 없을 테고 지난 대선에서도 진영 논리를 넘어선 후보자의 정치철학이 표심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을까 싶지만, 후보 시절부터 부단히 강조된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엔 관심을 갖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재건하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35번,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21번 등 윤 대통령은 중요한 대내외 공식 석상에서 자유를 언급했다. "취임 7개월이 다 되도록 국정 철학이 안 보인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쯤 되면 자유만큼은 윤석열 정부의 확고한 이정표로 봐도 무방하겠다.

본인이 그 의미를 자세히 밝힌 적은 없지만,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론과 친연성이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친에게 대학 입학 선물로 받은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1980)를 토대로 형성됐다는 그의 세계관은 주요 연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진정한 자유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자아를 인간답게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유엔 총회 연설) 같은 대목은 프리드먼의 저술과 정확히 겹친다.

프리드먼은 당대 경제정책의 주류였던 케인스주의에 맞서 정부 재정정책을 비판하고 규제 없는 자유 시장을 옹호했다. 나아가 경제적 자유가 정치적 자유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며 선택의 자유에 입각한 사회 정책들을 제안했다. 그중엔 의사면허제 폐지, 마약 합법화처럼 파격적 주장도 있다. 지난 200여 년간 서구 자유주의 사조를 탐색한 역작 '자유주의'(에드먼드 포셋 지음)에서 프리드먼은 '국가에 맞선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자리매김됐다.

윤석열 정부가 경제정책에서 규제 혁파, 민간 중심 경제 활성화를 앞세우는 것은 그 수장이 프리드먼식 자유주의 신봉자인 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다만 관치의 권능은 포기하지 않았다.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전방위 지원을 추진하는 과정은 어떤 전임 정부보다 과감하다. 현실에 매인 정책이 사상을 온전히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를 자유주의에 대한 '배신'으로 보는 건 섣부르다. 프리드먼을 경제 자문으로 뒀던 닉슨 대통령도 인플레이션이 정치적 위기로 번지자 표변했다. "이제 나는 케인스주의자"라고 선언하며 프리드먼이 반대하던 가격 통제에 나섰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진정한 '자유의 사도'인지 의심스럽게 하는 일이 적지 않다. 투자 유치를 위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면담하면서 "강성 노조로 인한 어떤 위험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힌 외신 인터뷰가 비근한 사례다. 수출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한 날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하자 개탄의 감정이 진하게 드러나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특정 언론사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가 도어스테핑 중단과 대통령실 기자실 외부 이전 검토로 비화된 일, 여태 야당 지도부를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윤핵관'을 여당 지도부보다 먼저 관저 만찬에 초청한 일은 또 어떤가.

포셋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자유주의가 발현하는 양상은 다양하지만 이를 한데 묶어주는 4가지 공통 이념이 있다. ①갈등은 불가피하다 ②권력은 견제돼야 한다 ③인간은 진보한다 ④국가는 어떤 존재이든 존중해야 한다. 자유주의는 이런 너른 품으로 전후 민주주의와 결합해 일부가 아닌 모두의 자유를 추구했고, 덕분에 경쟁 이념인 사회주의와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은 편가르기식 국정 운영의 어디에서 자유주의의 본령을 찾을 수 있나. 윤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는 가치인가.

이훈성 논설위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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