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 ‘직권남용’에서 자유로울 자 누구인가 [박찬수 칼럼]
박찬수 | 대기자
지난주 서울중앙지검이 민주당 당료의 인사 청탁을 받은 혐의로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수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당료인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워낙 문제가 많은 인물이라 그렇긴 한데, 인사 청탁 의혹만 보면 그리 복잡한 사안은 아니다. 씨제이(CJ)그룹이 정부 부지에 복합물류센터를 지어 운영했는데, 관례적으로 상근고문 한 사람을 국토교통부 추천을 받아 임명해왔다. 그 자리에 민주당 이정근씨가 간 것이고, 거길 가기 위해 청와대에 부탁을 한 것이다. 이 사안엔 인사를 둘러싼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국토부 퇴직 관리가 가는 자리를 집권여당 출신이 차고들어간 게 문제일 수 있고, 그 자리를 가려고 청와대 비서실장에게까지 청탁을 넣은 것도 정상적인 과정은 아니다. 더욱 본질적인 의문은, 우리가 흔히 ‘대통령이 바뀌면 3000개의 자리가 바뀐다’고 말하는 그 ‘3000개의 자리’ 중 얼마나 많은 숫자가 이런 식으로 인사가 이뤄질까 하는 점이다. 어쩌면 대통령 비서실장도 어디에 어떤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누가 갔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오래전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로부터 들은 얘기는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정부가 1970년대 강남에 대규모 개발을 하면서 공공부지에 백화점을 유치했는데 그 땅은 지금도 정부 소유다. 그런 연유로 백화점 감사는 매번 정부에서 임명했다는데, 우리(청와대)는 지금까지 그런 자리가 있는 줄 알지도 못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야 그걸 알았노라며 몹시 아쉬워했다.
역대 정부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진 왜곡된 인사에 사정의 칼날을 대겠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 정권 스스로는 그런 요지경 인사에서 벗어나고 있고, 또 그렇게 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먼저 내보이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 얼마 전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나는 지난 국감에서 문재인 정권의 관직 약탈을 비판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 이번에 한국수력원자력에 지역 정치인을 사외 이사로 낙점했다고 하다. 그분은 주점과 모텔을 운영한다고 한다. 한수원은 전력 생산하는 회사로 알고 있는데….”
논란이 일자 당사자가 사의 표명을 했지만, 이런 일은 한국수력원자력뿐이 아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해양과학기술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등 정부기관과 공기업 곳곳에 전직 국회의원을 비롯한 캠프 인사들의 낙하산이 줄줄이 내려앉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권 시절 비판했던 것의 판박이다. 한국가스공사 사장에 내정된 최연혜 전 국회의원은 1차 공모에서 탈락했다가 재공모에서 단수로 다시 정해졌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환경부 산하단체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안을 줄기차게 비판했던 게 국민의힘 자신이란 건 까맣게 잊은 듯 행동한다.
그래도 과거 정권들은 스스로 똑같은 허물을 뒤집어쓰면, 말로는 정치 공세를 펴도 검찰 수사까지 벌이는 모진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의 수사 의뢰는 단적인 예다. 감사원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역특혜 논란이 이해충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감사원 결정 과정에 전현희 위원장이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30일 언론 보도를 보면, 검찰은 이 사안의 재수사에 들어갔고, 경찰 역시 전 위원장의 부당개입 의혹을 본격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예로 들며 오히려 감사원 감사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지난 정권의 ‘직권남용’이 현 정권의 ‘직권남용’으로 이어지고, 아마 차기 정권에서도 이 혐의는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이다.
만약 4년6개월 뒤 정권이 바뀌면, 고위공직자 가운데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또는 업무방해 혐의로 수사를 받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나 ‘정치 감사’의 총대를 멘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2024년 총선에 반드시 출마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라도 나중에 수사를 받지 않으려면 국회의원 배지만큼 효율적인 방패가 없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는 물러난 뒤 자신이 남긴 레거시로 평가받는다는 공직사회 불문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정책 성과보다 극심한 정치적 대립의 최전선에 계속 서 있음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행태가 넘쳐나는 순간, 국정운영의 성공은 매우 어려워진다. 바로 그런 점을 공격해서 국민 지지를 얻었던 게 윤석열 대통령 아닌가.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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