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제주어가수 양정원 '다시 한 번, 당신의 노래를'

제주방송 신동원 2022. 11. 3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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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문화상 수상 양정원씨, 지난달 급성 백혈병 진단
"반드시 이겨내고 다시 무대 설 것"..."민머리, 시원하고 좋아" 익살
후배 예술인 등 치료비 마련 공연 등 도움 손길 잇따라
투병 전념 위해 작업실 정리..내달 2차 항암치료 돌입
전신마비 이후 두 번째 시련, 그가 전한 희망 메시지는?
제주어 가수 양정원씨.


"시원하고 좋습니다."

독한 항암치료를 하며 머리카락을 민 50대 예술인은 씩 웃어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30일) 제주시 삼도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제주어 가수 양정원 씨(55).

그는 올해 제주도 문화상 수상자 7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습니다.

오랫동안 제주어 창작 노래를 부르며 소멸위기 언어 지정된 제주어 보전에 이바지한 것은 물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지속적으로 공연을 여는 등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한 그의 노고가 인정된 것입니다.

이런 그는 지난달 급작스럽게 급성 골수성 백혈병(혈액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건강 검진에서 혈액이 모자라고, 백혈구 수치도 너무 낮다는 말을 듣고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한 이후 받아든 결과였습니다.

급히 서울로 올라가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제주에 다시 내려온 것이 지난 25일.

오늘은 투병에 전념하기 위해 수년 간 사용해 온 작업실을 정리하는 날이었습니다.

작업실 곳곳에 밴 추억을 정리하는 것이 씁쓸할 수도 있지만, 그의 목소리엔 희망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양정원씨.(양씨 페이스북)


■ 학창 시절부터 제주어 노래, 양정원은 누구?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제주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기성 가요를 제주어로 '번안'해 부른 것인데요.

제주어 노래의 첫 시작은 주위 친구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주어 노래는 숫기가 없던 청년이 유일하게 친구들의 관심을 끌수 있었던 무기인 셈이었습니다.

이후 줄곧 마이크를 잡아온 그가 대중 가수로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이후였습니다.

그는 당시 발매한 2집 앨범 수록곡 가운데 '삼춘'이라는 노래가 알려지며 대중들의 뇌리에 처음으로 각인된 것입니다.

그의 곡 '삼춘'은 "삼춘~ (무사) 삼춘~ (무사) 삼춘~ (무사게) 어디감수꽈"[삼촌~ 왜 삼촌 왜~ 삼촌 왜~ 어디 가세요]라는 익살스럽고 친근한 가사의 제주어 노래입니다.

2018년 입주 이후 코로나19 방역 강화 기간을 제외하고 매월 공연과 작업 활동을 해온 양정원 씨의 작업실.


양씨는 "이번에 40년 만에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중학생 때도 노트에 제주어 노랫말을 썼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노래를 부른다고 신기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설 통기타 치면서 '촌놈' 소리 들으면서 했던 제주어 노래로 이만큼 인정 받게 됐다"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정식 발매한 제주어 창작곡만 30여 곡, 공식 앨범은 7장에 달합니다.

지난해에는 동경 바당 좀녀 등 2곡의 제주어 단독 음원을 발매했습니다.

공연장에서만 불렀던 미발매 창작곡까지 합하면 훨씬 많은 제주어 노래들이 양씨의 입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 교통사고, 그리고 전신마비 "기타 치는 것이 재활"

이런 그에게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1994년, 친구와 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전복되면서 큰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전신 마비.

양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오른쪽 다리도 마비됐습니다.

상체에 통짜 깁스를 한 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가 치료비가 모자라 집에서 자연 치유를 해야 했습니다.

의사는 앞으로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198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에 바로 해병대 침투 부대에 입대할 정도로 운동을 즐겼던 양씨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양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앉는 연습부터 시작해, 서기, 지지대 잡고 걷기, 집 주변 거닐기, 먼 동네까지 다녀오기.

그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 스타일"로 끊임없이 걸었습니다.

기타 연주도 그의 양 손을 위한 재활 운동이었습니다.

1994년 사고 이후 손에 힘이 없어 골무에 피크를 이어 붙여 연주를 한다는 양씨. 사진은 양씨가 피크를 쥐는 모습.


재활 운동에 매진한지 2년이 지난 1996년에는 선배의 제안으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공연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호전됐습니다.

절룩이는 걸음이지만 혼자 거동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닐수록 제주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제주어 노래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양씨는 "더 제주가 아름답고 내 제주가 보인거죠. 제주 섬에만 쭉 있었으면, 그 울타리 안에만 갇혔으면 내가 이게 아름다운 건지 모르는데 다 돌아다니다 보니까. 아무리 좋은 데라도 고향 제주도만큼 한 데가 없구나 깨닫게 된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주어로 대중가요를 만들게 되면 아이들도 따라 부르기 쉽잖아요"라며 자신의 노래가 제주어가 계승되는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어 가수 양정원씨.


■두 번째 시련 백혈병, "또 이겨낼 것, 투병 기간 창작 활동 매진"

올해 50대 중반인 양씨.

내년이면 5살이 되는 어린 딸이 있습니다.

6년 전 결혼해 처음으로 얻은 금지옥엽입니다.

양씨가 병마를 이겨내야 하는 가장 절실한 이유, 가족입니다.

후배 예술인들은 그의 치료비 마련을 돕기 위해 이번 11월에만 2차례에 걸쳐 공연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외에 그동안 연을 쌓아온 각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전해졌습니다.

장애로 인한 지속적인 병원 진료로 암보험 가입이 어려웠던 그에게 있어 천금과도 같은 도움이었습니다.

양씨는 "한 번 시련을 견뎌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악으로 깡으로 이겨낼 것"이라며 "오히려 내가 도움을 줘야할 예술인 후배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너무 고마운 분들이 많아서 빨리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힘 있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음악들을 만들 수 있는 구상도 하고 창작활동에 전념할 것"이라며 투병 기간을 도리어 도약의 시기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씨는 팬들을 비롯한 도민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늘 우리 곁에는 힘든 일밖에 없는데, 그래도 그것을 힘들다고만 여기면 더 힘든 것 같다"며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나한테 희망으로 가기 위한 단계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양씨는 다음달 5일 순천향대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일주일 후에 2차 함암치료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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