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타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반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이상원 기자 2022. 11. 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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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0일 오전 8시30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전날 벌어진 이태원 참사 실종자 신고를 받는 곳이었다.

11월14일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가 공동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전체를 싣고 이름을 하나씩 빼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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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프리스타일] 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11월1일 이태원 사고 유실물센터를 찾은 가족들이 물품을 살펴보고 있다.ⓒ시사IN 이명익

10월30일 오전 8시30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전날 벌어진 이태원 참사 실종자 신고를 받는 곳이었다. 12시간 동안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을 지켜봤다. 주저앉는 사람이 있었고 오열하는 이도 나왔다. 가족 이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자리를 떴다. 대부분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취재를 원치 않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들러붙는 기자들에게서 도망치듯 나왔다. “말 걸지 마세요!”라고 소리친 이도 있었다.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고 취재진 사이를 헤쳐간 사람도 봤다. 당일 현장 기자들이 보도한 ‘유가족 반응’은 대개 둘 중 하나였다. 집요하게 따라붙어 ‘현재 심경’을 캐물은 결과물이거나,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곡소리였다. 유실물 센터에 찾아온 이들 다수도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경찰은 유가족 요청으로 기자의 장례식장 출입을 막았다. 참사 보름이 지난 현재(11월17일)도 유가족협의체는 구성되지 않았다.

왜 유가족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알 수 없다. 무너져 내린 피해자의 눈을 보고 그런 질문을 할 수는 없다. 기자가 아는 정보는 그들 다수가 취재 요청에 부정적이었고, 직접 발언하지도 않는다는 ‘현상’뿐이다. 그대로 존중할 따름이다.

11월14일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가 공동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유가족 모두의 의중을 알 수는 없다. 다만 11월17일 29명의 이름이 공란으로 바뀐 것으로 보아, 최소 이만큼의 유족은 성명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알렸음을 짐작게 한다. 영국 BBC는 편집 지침(editorial guidelines)에서 재난 보도 원칙을 이렇게 적는다. “우리는 언제나 완전하고 정확한 보도가 가져다주는 공익과, 부당하게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며 연민을 갖추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 구절 아래에는 재난 피해자들을 보도할 때 지킬 세심한 지침들이 열거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전체를 싣고 이름을 하나씩 빼야 했을까. 유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의사를 묻고 이름을 ‘채워가는’ 방식을 썼다면 어땠을까.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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