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그랑크뤼, 지금 마셔도 좋고 숙성 잠재력도 큰 와인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김기정 전문기자(kijungkim@mk.co.kr) 2022. 11. 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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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보르도 '그랑 크뤼' 시음회
최근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2022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에서 참석자들이 와인을 시음해보고 있다. 【사진 제공=소펙사코리아】

프랑스 와인을 얘기할 때 '그랑 크뤼(Grand Cru)'만큼 설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프랑스 와인은 일상적으로 마시는 '테이블와인'부터 최상위 'AOC등급'까지 크게 4개 등급으로 나뉘는데 그랑 크뤼는 가장 뛰어난 포도밭에서 나오는 와인을 의미합니다.

프랑스의 와인 등급은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어 복잡합니다. 또 그랑 크뤼라는 용어도 지역에 따라 의미에 차이가 있습니다.

보르도 그랑 크뤼는 1855년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가 파리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처음 등급이 정해졌습니다. 보르도 메독 지구엔 61개 샤토가 그랑 크뤼 클라세(등급)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메독의 그랑 크뤼 와인은 다시 1~5등급으로 나뉩니다. 2등급 와인이었던 샤토 무통 로칠드가 1등급으로 승급한 사례를 빼곤 큰 변화 없이 등급체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반면 보르도 우안으로 불리는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는 1955년 만들어져 매 10년마다 개정됩니다. 하지만 등급에 불만을 가진 샤토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 반발이 심했고 급기야 올해는 최고 등급의 샤토 슈발 블랑, 오존, 앙젤뤼스가 등급제 참가를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샤토 파비는 이번에도 최고 등급을 유지했고 샤토 피자크가 최고 등급으로 승급했습니다.

생테밀리옹의 등급 심사 거부를 지켜보면서 와인 업계 일각에선 등급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반 소비자들에게 그랑 크뤼는 좋은 와인임을 알려주는 '브랜드'이며 와인 생산자들에게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한 '지향점'이 됩니다.

최근 보르도 그랑 크뤼 연합(Union des Grands Crus de Bordeaux·UGCB)이 주최한 '2022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1973년에 설립된 보르도 그랑 크뤼 연합은 보르도의 대표 와이너리들로 구성됐습니다. 이날 시음회에는 UGCB의 82개 샤토가 참가했습니다.

로낭 라보르드 UGCB 회장(사진)은 "보르도 그랑 크뤼 시장을 놓고 봤을 때 한국은 전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시장이며 아시아에서도 중국, 일본, 싱가포르에 이어 보르도 그랑 크뤼의 4번째로 큰 시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은 또한 2019년 빈티지 프랑스 보르도 그랑 크뤼가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데뷔하는 날입니다. 2019년 빈티지란 2019년에 수확한 포도로 양조한 뒤 1~3년 숙성을 거쳐 시장에 출시한 와인을 의미합니다. 제가 지난해 뉴욕 맨해튼에 있었을 때는 2019년 빈티지 프랑스 부르고뉴, 보르도 그랑 크뤼가 풀리기 시작했었는데 한국은 출시 시기가 한 해 늦는 것 같습니다.

박수진 WSA와인아카데미 원장은 "최근 10년간 보르도 와인을 빈티지별로 보면 2016년이 클래식한 의미에서 보르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와인 이야기 1회에서 비싼 와인은 '숙성 잠재력'으로 평가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랑 크뤼 와인들은 통상 숙성 잠재력이 높습니다. 대신 2019년 부르고뉴 그랑 크뤼는 한 병에 200달러가 넘어 일반 테이블 와인에 비해 10배 이상 비쌉니다. 하지만 영빈티지 부르고뉴 와인은 가격 차이에 비해 그랑 크뤼나 테이블 와인 맛에 큰 차이가 있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숙성이 돼야 제맛을 내는데 너무 어려서 그랑 크뤼도 산미가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부르고뉴 그랑 크뤼는 묵혀 두었다 마셔야 '제값'을 하는 와인입니다. 저는 지인들에게 2019년 부르고뉴 그랑 크뤼를 지금 마시는 것은 범죄행위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반면 2019년 보르도 그랑 크뤼는 지금 마셔도 좋고 시간을 두고 숙성시켜 마시면 더 좋다고 느껴지는 와인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부르고뉴 그랑 크뤼에 견줄 만한 메독 그랑 크뤼 1등급 와인이나 생테밀리옹 프리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 A등급 와인들의 2019년 빈티지를 지금 마셔버리는 것은 여전히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시음회에 나온 와인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와인은 샤토 카농 라 가펠리에르 2019입니다.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 프리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 B등급 와인입니다.

이 와인은 메를로 49%, 카베르네 프랑 39%, 카베르네 소비뇽 12%로 만들어졌는데 그야말로 카베르네 프랑의 재발견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리여리한 부드러움과 함께 끝까지 맛을 길게 이어주는 쌉쌀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쌉쌀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매력을 발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봤습니다.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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