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자율 위험성평가로 중대재해 감축”

박태우 2022. 11. 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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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
노동자 참여 보장 등 미지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기업 스스로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해 개선하는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해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산재사고 사망자를 줄이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내놨다. 정부의 감독·처벌 중심이 아니라 사업장의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령을 전면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주와 함께 ‘위험성 평가’의 주체가 되는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이 언급돼있지 않을뿐더러, ‘자기규율’이 규제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30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산업안전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이 설정한 목표는 노동자 1만명당 산업재해사고로 숨진 노동자 숫자를 뜻하는 사망사고만인율을 지난해 0.43에서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0.29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이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수는 828명으로 2026년까지는 지금보다 사망사고를 270여건 이상 줄여야 한다.

노동부는 중대재해 감축의 핵심 추진방안으로 ‘위험성평가’를 제시했다. 노·사가 함께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2013년부터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규정은 됐지만 의무조항은 아니었다. 노동부는 내년 300인 이상 사업장, 2024년 50인 이상 사업장, 2025년엔 5인 이상 사업장에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산안법을 개정해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지 않거나, 부적정하게 실시한 사업장에는 시정명령 또는 벌칙을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노동부는 “법령에 의한 규제·처벌 위주의 행정으로 기업은 타율적 규제에 길들여져 자체적으로 위험요인을 개선하는 시스템과 역량이 빈약”해졌고 “중대재해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에도 기업은 안전보건 역량 강화보다 처벌 회피에 집중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며 규제와 처벌 중심의 기존 정책으로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위험성 평가에 어떻게 노동자 참여를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로드맵에서 빠져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의무 사업장 규모를 현행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최근 중대산업재해로 큰 논란을 빚었던 에스피엘(SPL)은 사고 이후 노사공동으로 안전진단을 했으나, 소수노조 참여를 보장하지 않아 논란이 된 바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노동자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자율안전대책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며 “(위험성평가 참여 보장뿐 아니라) 노동자의 위험작업중지 권한에 관한 구체적인 대책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산업안전 현실을 고려하면 ‘자기규율’이 기업들의 ‘규제완화’ ‘처벌완화’로 읽힐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부는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한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처벌을 덜 받을 수 있도록 조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내년 전문가 논의를 거쳐 중대재해법의 처벌 조항을 현행 징역형 등 형사처벌에서 과징금과 같은 경제적 제재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산업안전감독은 전체 사업장의 1% 수준에도 못 미치고 사망사고 이외에는 산안법에 따른 형사처벌에 그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어도 처벌은 솜방망이였던 것이 한국의 규제와 처벌의 현실”이라며 “감독과 처벌의 완화를 동반한 위험성 평가는 실패한 자율안전 정책의 재탕 삼탕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경제단체들은 정부 로드맵의 기본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위험성 평가 의무화 등 새로운 처벌·감독 규제가 다수 포함돼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번 로드맵이 안전 주체들의 책임에 기반한 자기 규율과 예방 역량 향상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 데 경영계도 공감한다”면서 “그러나 세부 과제를 살펴보면 자율은 명목뿐이고 오히려 처벌·감독 등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경총은 “위험성 평가의 의무화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중복 규제 정비와 자의적 법집행 방지를 위한 명확한 기준 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또다른 규제에 불과할 뿐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강한 처벌 규정을 그대로 둔 채 위험성 평가의 의무화를 통한 새로운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 규제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김회승 선임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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