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회사 들이닥친 공무원들  ‘업무개시 명령’뒤 계약서 복사…일부 비조합원들 운송 재개[화물연대 파업]

강현석·유선희·이삭 기자 2022. 11. 3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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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한라시멘트 앞에 30일 파업에 참여한 시멘트 화물 노동자들의 차량이 멈춰 서있다. 전날 정부는 집단 운송거부에 나선 화물연대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한수빈 기자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등으로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운송사업자는 개시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명령한다”.

전남의 한 시멘트 운송회사는 30일 오전 회사로 찾아온 국토교통부 공무원과 경찰 등 4명으로부터 이런 내용이 적힌 ‘업무개시 명령’을 받았다. 국토부는 이 업체에 ‘12월1일 24시까지’ 업무에 복귀하도록 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차는 위반차량 운행정지 30일, 2차는 허가취소 될 수 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이 업체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를 소유하고 있는 화물노동자 26명과 운송 위·수탁계약을 맺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이 왜 그동안 운송을 하지 않았는지 경위서를 받아 가고 노동자들 개인 정보가 담긴 계약서와 주소 등을 복사해 갔다”면서 “내일부터 배차를 거부하면 회사 쪽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이 6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시멘트 운송회사 등을 직접 찾아가 본격적으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며 압박에 나섰다.

정부는 운송회사에 ‘조사명령서’를 제시하며 회사와 노동자가 맺은 ‘화물운송 위·수탁 계약서’ 와 노동자 주소 등을 확보하고 있다. 개인사업자인 화물노동자들의 정보를 파악, 등기우편으로 업무개시 명령을 보내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업무개시 명령을 받은 한 운송회사 대표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에게 힘을 더 실어주고 싶지만, 비조합원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는 만큼 내일 오전 8시부터 차량을 배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30일 전남의 한 운송회사에 내린 ‘업무개시 명령’. 정부 관계자들은 이 회사에 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의 계약서 등을 복사했다. 화물연대 전남본부 제공.

운송회사에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에 파업에 동조하며 운행을 멈췄던 일부 비조합원들은 운송을 재개하기도 했다. 이날 한일시멘트 단양공장에 시멘트를 실으러 온 A씨(65)는 운송회사 측으로부터 업무개시 명령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복귀했다고 했다.

그는 “비조합원이어서 화물연대의 파업에 동참하진 않았지만 노조원들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운행을 중단하고 있었다”며 “불이익을 우려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운행을 중단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운행에 복귀한 B씨(52) 역시 “정부가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 개인사업자라고 해 놓고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우리가 노예도 아니고 왜 정부에서 업무개시를 하라 말라 하는 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조합원들에게는 법적 효력이 없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업무개시 명령이 전달되기도 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29일 업무개시명령 발동 후 일부 조합원들에게 (문자) 업무개시 명령서가 송달되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직접 송달받은 사례 없이 문자를 통한 송달만 확인된다”면서 “정부는 효력 없는 업무개시명령서 송달로 파업 대오 흔들기를 중단하라”고 말했다. 이어 “절차를 무시한 무차별적인 송달로 명분을 쌓고 화물 노동자를 겁박하는 행태가 정부가 이야기하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위재영 화물연대 전남본부 지회장은 “그동안 비조합원들도 총파업에 동참해 대부분 운송을 거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갈라치기 하려는 목적”이라면서 “조만간 조합원들에게도 업무개시 명령이 통보되겠지만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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