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에 얽힌 성공담 아닌… 한 장마다 마주한 고민과 생각들
김경훈 로이터 통신 사진기자는 2019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2018년 11월 멕시코와 미국 국경 지대에서 온두라스 모녀를 프레임에 담았다.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엄마가 기저귀 차림 두 딸의 손을 꼭 잡고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사진이었다.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남미 이민자 행렬 ‘캐러밴’에 대해 입국금지 정책을 내놓은 터 사진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고 수상까지 이어졌다. 책 <인생은 우연이 아닙니다>는 바로 그 사진기자가 쓴 인문 에세이 모음이다. 늘 카메라 뒤에서 사진으로 말하던 기자가 저자로서, 글로 하고 싶었던 얘긴 뭘까.
‘한국인 사진기자 최초 퓰리처상 수상자’가 쓴 에세이라면 세계를 누비는 취재 활극의 스펙터클, 저널리스트이자 사진가로서 고뇌, 내 삶을 뒤흔들 새로운 통찰과 대단한 역량 등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에게 환상과 기대를 품을 순 있겠지만 단언컨대 이 책에 그런 기대를 하는 독자라면 실망할 것이다. 책엔 ‘퓰리처상 수상 기자’가 없기 때문이다. ‘수은 중독으로 미나마타병에 걸린 사람들’, ‘낚싯대를 이용해 가다랑어를 잡는 어부들’, ‘가정폭력과 방임으로 피해자가 된 아이들’, ‘다시 일상을 회복하려는 이재민’, ‘휠체어 댄서’, ‘살처분을 앞둔 유기견’, ‘마지막 생존 중국 위안부 할머니’ 취재를 위해 일본,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 등을 분주히 뛰어다닌 ‘기자’가 여기 있을 뿐이다. 수상 발표가 난 날 그는 오늘 무슨 취재를 했냐는 질문에 ‘똥을 귀여운 이미지로 만든 똥 박물관이 일본에서 인기여서 거기 다녀왔다’고 답하기도 했다.
배반된 기대의 자리를 대신 채우는 건 ‘태도’다. ‘거리’, ‘각도’, ‘색감’, ‘피사체’란 책 구성을 통해 각각 인간관계, 삶의 태도, 순간의 감정, 인생의 목적 등 내용으로 묶인 총 22개 글에선 “업의 본질”을 생각하고 이 일이 요구하는 직업윤리에 충실하고자 했던 한 직업인의 자세가 일관되게 드러난다. ‘사진 한 장’에 얽힌 성공담이 아니라 ‘한 장’마다 지난한 과정을 마주했던 1인의 많은 고민과 생각이 핵심이다. 예컨대 아동 시절 가정폭력과 방임 피해를 겪은 여성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문제적인 사람들의 비난, 몇 년 뒤 결정을 후회할 수 있다는 이유를 설명하며 “얼굴을 잘 알아볼 수 없는 사진 몇 장만 골라서 보도”하겠다고 했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언제나 보도사진 한 장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진 속 주인공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적는다.
퓰리처상을 안겨준 마리아 메자 가족 취재 다음날 그는 난민촌을 방문해 인터뷰를 했고 밥 한 끼를 같이 하기도 했다. 취재 대가란 생각 없이 편히 밥을 먹기 위해 회사에 허락도 받은 상태였다. “이 동네에서는 KFC가 제일 좋은 곳”이라 프라이드치킨을 함께 먹고 생필품을 사 들여보냈다. 아이들은 현재 미국에서 여느 십대처럼 학교에 다닌다. 멕시코 식당 요리사로 일하는 메자는 미국을 방문하면 타코를 대접하겠다고 꼭 들러달라 말한다. 열혈기자로서 면모를 기대한 독자라면 성에 안차겠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특종 사진기자가 되기보다는 훌륭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쓴다.
결국 책은 ‘내가 해보겠다’와 ‘왜 한다고 했지’ 사이 진자운동인 줄 알았던 생이 시간 앞에선 어떤 방향으로 가는 나선운동이더라는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그를 깎고 빚어낸 ‘일’과 ‘사람’, 거기서 영향 받은 ‘방향’이 저자가 지금의 자신이 되게 만든 요인이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여러 현장의 취재기, 사진가와 사진 이야기, 일에 대한 소신, 가족 얘기는 모두 이 자장에 놓인다. 실제 그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바뀌기도 했지만 바뀐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사진 좀 찍어달라”는 무례한 요구에 언짢아하던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취재 당시 ‘이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어요. 미안하지만 가족사진 한 장 찍어줄 수 있나요’란 이재민 부탁을 계기로 사진 인심 후한 기자가 됐다. 사진기자인 저자는 ‘사진’을 매개로 관계 맺던 세상에 대해 못 다한 말을 이제 책이란 더 긴 찰나 안에 잡아둔다. 특히 모두가 자신만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항상 거기 있어야 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한 인간이 수많은 일을 겪고도 ‘친절함’과 ‘배려’란 태도를 얘기하고 결국 ‘사람’을 말하는 순간을 바라보는 건 묘한 감동이 있다. 사람을 사람이 만나 이렇게 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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