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버스터] '리틀 리설주'와 화성-17형 환호…김정은, 믿는 구석이 있다?

김아영 기자 2022. 11. 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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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직격한 경고장…"핵 쓰면 김정은 정권 종말"

안녕하세요. SBS 통일외교팀 김아영입니다. 외교, 국방, 통일 뉴스의 핵심을 정밀 타격하듯 풀어드리는 '벙커버스터' 다섯 번째 순서입니다. 숨 가쁜 정상 외교가 몰아쳤던 11월 외교 대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1대 1로, 때로는 여럿이 마주 앉았던 한국·미국·일본 그리고 중국. 성적표는 어떨까요? 대북 압박의 목소리를 키운 한·미·일. 선은 넘지 말자고 하면서도 타이완 문제에는 팽팽히 맞선 미국과 중국. 3년 만의 만남에도 여전히 시각차를 드러낸 중국과 한국·일본. 각자의 복잡한 셈법이 얽힌 가운데 승자는 없었다는 평가입니다.

그런데 웃는 사람은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국제 외교전을 매우 흥미롭게, 어쩌면 만족스럽게 지켜봤을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핵 쓰는 순간 'The End'…'북한 정권 종말론' 나왔다

이곳은 미 안보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 펜타곤입니다. 한반도에서 한미 공군 전력이 수시로 출격해 훈련하고 이에 반발한 북한 도발도 끊이지 않는 동안, 펜타곤에서 한국과 미국 국방장관이 만났습니다. 한미안보협의회 SCM을 마치고 평양을 향한 한 장의 '레드카드'가 나온 겁니다. 경고장을 받을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명시해서 말이죠.

[이종섭/국방장관 (3일) : 핵을 사용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을 맞게 될 것임을….]

[오스틴/미 국방장관 (3일) : 그들이 한국을 공격하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미안보협의회는 지금까지 모두 54차례 열렸는데 공동성명에 '김정은 정권 종말'이란 표현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담긴 적은 없었습니다. 양국 장관은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와 B-1B를 둘러보는 모습도 이례적으로 공개했습니다. 북한이 핵을 쓰면 바로 보복할 수 있는 수단까지 보여준 거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처음 발표된 핵 태세 검토보고서 NPR에도 북한이 극도로 싫어할 표현이 담겼습니다. '김 씨 정권이 핵을 쓰고도 생존할 수 있는 시나리오란 없다'는 내용이었죠.

[월터 슬로콤/전 미 국방부 정책차관 (1일, 출처 : Atlantic Council) : '당신들이 핵을 쓰면 우리는 (북한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정권을 파괴할 것이다'라는 얘기를 한 겁니다. 좋은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랑곳 않는 김정은…딸과 함께 괴물 ICBM '환호'

김정은 체제를 직격하는 미국의 경고에 북한이 내놓은 답변은 어땠을까요?

[조선중앙TV (19일) : 감히 우리의 신성한 존엄과 자주권을 침탈하려고 무분별하게 날뛰는 미 제국주의라는….]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다는 괴물 ICBM, 화성-17형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발사 현장에 딸 '주애'까지 동행하면서 말이죠. 화성-17형은 탄두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실을 수 있는 다탄두 모양입니다. 전에 체면 구기면서 발사에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미사일이 6천km 넘게 치솟고 1천km를 날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행 시간만 4천135초, 1시간이 넘었다고 했는데 우리 군이 파악한 수준과 비슷합니다. 최고 수위의 경고장을 보낸 미국을 향해 움츠러들기는커녕, 더 과감한 도발을 한 셈입니다. 김정은을 제외하면 북한에서 군 서열 1위인 박정천은 이 발사에 앞서 말 폭탄을 던졌습니다. 미국의 정권 종말 경고는 '헷뜬(허튼) 망발'이다, 이제 한반도는 미국의 허세가 전처럼 통하는 곳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요.

한반도로 보내는 미국의 핵우산들도 더 이상은 두렵지 않다는 얘기일까요?
 

카다피-후세인 트라우마…불안감 극복했나

북한 정권은 한동안 앞서 무너진 독재정권의 비참한 최후를 굉장히 의식했던 걸로 추정됩니다. 김정은의 최근 발언에서도 얼핏 그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김정은/북한 노동당 총비서 (9월 9일 시정연설) : 미 제국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설교와 궤변과 제재 압박 그리고 군사적 위협에 못 이겨서 잘못된 선택으로 비참한 말로를 걷고 비극적 마감을 맞은 20세기 21세기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독재자의 최후를 돌이켜보면요.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 개발한다는 의혹을 받고 미국의 압도적인 공격을 받았고 사담 후세인은 전쟁 패배 후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경제 제재를 받던 중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놀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먼저 엎드립니다. 정권 유지를 위해 핵 개발 포기를 선택한 거죠. 하지만 후세인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2011년 중동에서 민주화 혁명이 휩쓸었고 카다피는 시민군에 목숨을 구걸하다 사망했죠. 김정은이 2011년 말 최고 권좌에 오르기 불과 두 달 전이었습니다. 이걸 지켜본 김정은의 불안감이 어땠을지는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최근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면 이제는 그런 불안감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의 위험한 자신감…뭘 믿고 이러나

김정은이 이렇게 자신감을 나타내는 건 확실하게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입니다. 우선은 자신들이 핵을 가진 전략 국가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의 핵 보유국인 인도 파키스탄처럼 핵 실험만 벌써 6번 했고,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완성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ICBM 발사도 여러 번 성공한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 못지않은 결정적 배경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바이든과 시진핑·바이든과 푸틴의 역학관계입니다. G20 정상회의 때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처음으로 대면했었죠. 양국 간 '결정적인 결전보단 첫 걸음'이었다는 데 무게를 두는 일부 평가도 나왔지만 껄끄러운 관계는 고스란히 노출됐습니다. 시진핑 주석에게 인권에 대한 질문을 한 미국 기자는 회담장에서 끌려나가기도 했죠. 북한 문제라고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압박했지만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우려를 해결해야 한다고 오히려 두둔했죠. 회담 이후 나온 중국 자료에는 북핵 문제가 언급조차 되지 않았는데 북한으로서는 흡족할 만한 일입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으로 푸틴과 바이든의 관계까지 최악입니다. 북한으로선 든든한 보험이 두 개나 있는 셈이죠. 북한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점령 지역인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자치공화국을 누구보다 먼저 독립 공화국으로 인정하겠다고 나선 것도 다분히 러시아를 의식한 행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도발하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

그런데 이런 국제 정세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북한 역시 미·중, 미·러 간 갈등 구도가 당분간은 지속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최용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작년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이 뭐라고 그랬냐고 하면 '지금 국제 정세는 신냉전이다'라고 규정해요. 그리고 올해 시정연설에선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변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미국이 일국 패권을 중심으로 우세한 시대는 지났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게 자신들의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단순히 버티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들이 도발할수록 더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걸로 분석됩니다.

[최용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심지어 올해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이 뭐라 그랬냐면 지금 긴장 격화된 국제 정세가 자기들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를 활용할 것이라고 얘길 합니다.]

실제로 올해 한미연합훈련 기간 북한의 반응이 과거와 많이 달랐죠.

[최용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과거 같으면 북한이 한미연합훈련하면 굉장히 조용히 있었거든요. 그 전에 비난을 하고, 끝나고 나서 무슨 다른 도발을 한 적은 있었어도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 동안에 미사일을 쏘거나 적극적으로 군사훈련을 하고 하진 않았는데 (달라졌죠.)]

북한은 미국의 핵항모가 부산에 있어도 한미 전투기가 상시 출격해도 개의치 않고 무력 시위를 감행했습니다.

최근엔 우리에 대한 도발 양상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포항을 비롯해 남측 동해안 지역이 그려진 지도를 펼쳐 놓고 군사 작전 계획을 수정한다고 했고 이후 전술핵 부대 훈련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NLL 이남 공해 상으로탄도미사일을 쏴서 울릉도에는 공습 경보가 울리는 등 휴전 이후 처음 보는 행태도 나타났죠. 한미를 향한 북한의 자신감이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객관적 전력과는 별개로 북한이 그렇게 믿는다는 건 그 자체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유엔 차원의 대응이 매번 불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한·미·일은 더욱 밀착하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다만 이게 북한에 관한 외교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북한이 화성-17형을 쏜 날 태국에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던 한·미·일 세 나라와 뉴질랜드·캐나다·호주는 급하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불과 4시간 만에 강력 규탄 메시지를 내면서 북핵 대응 의지를 보여줬다고 정부는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장에선 시진핑 주석에 관한 질문이 어김없이 나왔습니다. 북한에 가장 효과가 빠른 경고를 날릴 수 있는 게 중국과 러시아란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북한이 미·중·러 국제 갈등을 무기로 삼는 상황에선 더더욱 한·미·일뿐 아니라 한·중, 한·러 관계까지 고차 방정식을 풀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라고 해서 북한을 계속 묵인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이런 최소한의 신호조차 보낼 수 없다면 북한발 긴장은 당분간 브레이크가 없을지 모릅니다.

(기획 : 정윤식 / 영상취재 : 이재영 / 편집 : 정용희 / 콘텐츠디자인 : 장지혜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김아영 기자ni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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