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물가 인하보다 경제 살리기가 먼저다

입력 2022. 11. 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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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윤 < 한국외대 명예교수·前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

최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국내외 금융 및 경제 전문가 72명 중 60% 가까이가 1년 이내에 한국 금융시스템에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최대 리스크로는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 악화에 따른 부실 위험 증가’를 꼽았다고 한다.

왜 갑자기 금융시스템이 위기를 맞은 것일까? 우선 2018~2019년에 걸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상당수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생존 차원에서 금융권으로부터의 차입을 크게 늘렸다. 부동산 정책의 연이은 실패로 소위 ‘영끌족’(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상당수 가계가 금융권으로부터의 차입을 크게 늘렸다. 또한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피해를 입은 영세 업체들에 지원해 준 저리 자금 만기가 거듭 연기된 경우가 많아 이들 또한 차입금을 끌어안게 됐다.

그러다 올해 초에 발생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국제적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이를 잡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부터 한국은행까지도 고금리로 대처하고 있다. 그런데 고금리는 전술한 기업과 가계의 거대한 차입금을 부실화한다. 여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한국 금융시스템은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되는 것이다. 실물 경제에서 피의 역할을 하는 자금이 금융권으로부터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경제활동 전체의 위기가 심화될 것임에 분명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경제는 대외지향적 수출 정책을 토대로 발전해왔다. 수출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도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다. 지금 한국 경제는 수출 활동도 원활하지 못해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지적돼야 할 점은 금융시스템 위기와 수출 활동의 부진은 상당 부분 연동된다는 사실이다. 가령 수출 활동이 원활해 무역수지 흑자가 되면 가계는 취업 기회 증대로 가계대출 상환 여지가 커지고, 기업들도 경영이 활기를 되찾으면 상환능력이 향상돼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스템도 자연히 정상화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한국의 이자율(금리)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가 급등은 개개인의 실질소득을 하락시켜 생활을 어렵게 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자율을 인상하는 것은 정당한 정책 방향이다. 하지만 가계나 기업이 감당할 능력 이상으로 금리를 올려버리면 가계나 기업의 금융 부채가 부실화될 뿐 아니라 일본·중국·대만 등에 대한 수출 경쟁력도 크게 떨어진다. 한국은 제로 금리 상태인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대만에 비해서도 금리가 훨씬 높다. 그만큼 이들 국가에 비해 금융 비용이 늘어나고, 수출 경쟁력 하락으로 한국경제가 침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지금 한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물가 인하를 유도하고 국내에 투자하는 외화 자금의 유출을 방지하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짚어봐야 할 점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한국경제가 부실화한다면 오히려 외화 유출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금융당국은 이번에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밖에 인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지금 이자율은 수출 경쟁국에 비해서도, 국내 가계와 기업의 거대 규모의 차입금이 감당하기에도 너무 높다. 한국경제의 구체적 조건은 무시한 채 미국이 올리니까 우리도 올린다는 식의 접근방법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대외지향적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한국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경쟁국 선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013년 일본의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추진으로 엔화 가치가 급락했는데도 금융당국이 이를 도외시해 우리 실물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실업자가 대량 발생하는 우를 범했다는 점을 상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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