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화물연대 파업에 대처해야 할 정부의 자세

이윤정 기자 2022. 11. 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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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영국을 설명할 때 '영국병'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5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은 이 당시 영국의 모습과 닮았다.

1984년 영국 최대 노조인 탄광노조의 51주간 장기 파업에 끝까지 맞서 법과 질서를 회복시킨 것은 대처의 영국병 수술 의지를 잘 나타내는 사례다.

이번 파업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에 따라 '불만의 겨울'이 정면으로 닥쳐올 수도, 비껴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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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영국을 설명할 때 ‘영국병’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수년간 이어진 대규모 복지 정책과 노동자 과보호 정책의 끝은 물가 폭등, 생산성 하락, 잦은 노사 분규 등으로 국가 경쟁력이 바닥을 찍은, 영락없는 환자의 모습이었다. 1978년 말, 트럭 운전사들의 파업에 지하철, 간호사, 청소부 등 다른 직종 근로자까지 동참하면서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빠진 이른바 ‘불만의 겨울’은 영국병의 정점이었다.

지난 25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은 이 당시 영국의 모습과 닮았다. 전 정부는 산업구조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해묵은 노동정책을 개선하기보단 오히려 노동계의 힘을 키워주기 바빴다. 여기에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닥치자 국가 경쟁력이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화물연대의 파업은 전국 물류망을 마비시켜 한국 경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불법 파업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시멘트 공급이 중단되면서 전국 레미콘 공장이 멈췄고, 항만 물동량이 떨어지면서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까지 타격을 입게 됐다. 철강 공급이 어려워지자 연관 산업인 건설, 자동차, 조선까지 생산이 어려워졌다. 적자에 허덕이는 석유화학업계는 출하 차질로 공장을 세우기 일보 직전이며, 기름이 떨어져 개점휴업 상태인 주유소가 속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없다”며 시멘트 분야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거 불법 파업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기반한 엄정 대응’을 외쳤지만 정작 행동에 나선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 여름 51일간 파업으로 8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 사례만 봐도 그렇다.

정부의 대응은 일관성을 갖춰야 효과를 다할 수 있다. 화물연대와 협상이 강대강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정부가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번 업무개시명령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불법 파업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야 한다. 7개 화주단체도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지금까지 약 1조원의 피해가 발생했다면서도 정부가 미봉책으로 화물연대의 요구 사항을 들어줘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면, 노조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인 노동당은 결국 국민의 신임을 잃었고 마거릿 대처와 보수당이 집권하는 계기가 됐다. 대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하고, 노동 쟁의를 부르는 노조의 면책특권을 줄였다. 1984년 영국 최대 노조인 탄광노조의 51주간 장기 파업에 끝까지 맞서 법과 질서를 회복시킨 것은 대처의 영국병 수술 의지를 잘 나타내는 사례다.

화물연대 파업에 더해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30일부터 파업에 돌입한다. 윤 대통령은 “노사 문제에 있어 당장 타협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면 또다른 불법 파업을 유발하게 된다”고 했다. 이번 파업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에 따라 ‘불만의 겨울’이 정면으로 닥쳐올 수도, 비껴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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