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엄빠’ 시청자 게시판이 “폐지하라” 댓글로 도배된 이유[플랫]
“프로그램 폐지해주세요.”
MBN 예능 <고딩엄빠>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10대에 부모가 된 사례를 방송에 내보내는 과정에서 미성년자와 성인 간 연애를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으로 그리며 미성년 대상 성착취 등 실재하는 위험을 지운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고딩엄빠>는 10대에 부모가 된 엄마, 아빠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3월 시즌 1을 시작으로 지난 6월부터 시즌 2가 방송되고 있다. ‘벼랑 끝에 선 고딩엄빠들이 어엿한 사회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고, 방법을 모색해본다’는 의도로 기획됐다. 어린 나이에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을 하며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차별적인 사회의 시선 등을 그대로 담아내며 ‘10대 임신’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22일 방송이 특히 문제가 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18세 여성이 열 살 많은 교회 교사와 사귀다 임신을 해 가정을 꾸린 사례가 소개됐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학교폭력을 겪었던 사례자는 교회에서 남편을 만났고, 10년 동안 총 5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그 과정에서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교인들로부터 ‘교회 선생님을 꼬신 꽃뱀’ 소리를 듣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전파를 탔다.
방송이 나간 뒤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미성년자의 경제·정신적 취약함을 이용해 성적으로 착취하는 그루밍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미성년-성인 간 관계를 ‘나이 차이를 극복한 사랑’으로만 그려냈다는 것이다. 해당 방송을 본 직장인 A씨(31)는 “미성년자는 기본적으로 성인의 로맨틱한 관계의 상대가 아닌 보호의 대상이어야 하지만 방송에서 이런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미성년 대상 성착취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올 수 없는 방송”이라고 말했다. <고딩엄빠>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이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게시물이 잇달아 게재됐다. 일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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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엄빠>에 미성년자와 성인 커플의 케이스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 방송된 13화에서는 18세에 31세인 남편을 만나 고등학생 신분으로 임신과 출산을 한 사례자가 나왔다. 이 방송에서는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남편의 폭력적인 언사를 묵묵히 감내하는 사례자의 모습이 그려져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다. 이 밖에 10대 때 아홉 살 연상의 남편을 만나거나 10대 후반에 20대 중반 남성과 사귀다 임신을 한 사례 등 시즌 1~2에 걸쳐 미성년자-성인 간 관계는 여러 차례 다뤄졌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뤄지지 않았고, ‘귀중한 생명을 책임지며 기특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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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이나 가정폭력 등 출연 가정의 불행을 전시하면서도 별다른 솔루션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방송 초기부터 나온 지적이다. MC와 패널들은 폭력적이거나 무책임한 남편의 행동에 대해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거나 한마디씩 던질 뿐 그것이 가정폭력이라는 진단은 내리지 않는다. 일자리를 연계하거나 사례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조언 또한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일각에선 <고딩엄빠>가 원치 않은 임신에 출산을 선택한 것을 ‘책임감’으로 묘사하면서 ‘임신 중단은 무책임’이라는 낡은 구도를 강화한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고딩엄빠>가 거론된 장면은 제작진 의도와 관계없이 해당 프로그램이 정확히 이 구도 안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경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어떤 프로그램은 저출생 극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고딩엄빠>를 언급했다. 나 부위원장은 앞서 1인 가구 스타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MBC 예능 <나혼자 산다>가 비혼을 조장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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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 기자 min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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