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쟁 상징이 ‘돈벌이’로 전락…혈안된 ‘특허괴물’ 삼성을 노린다 [비즈360]

입력 2022. 11. 3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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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E의 한국 기업 대상 특허소송 해마다 증가세
‘사나포선’ 전략 확대…NPE 등 판매압박·과도한 금액 요구
특허권자에 유리한 텍사스 지법 소송 몰려
천문학적 소송 비용…경쟁력 약화 등 우려
핵심 기술 특허 매입 등 국가 차원 조치 필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 본사 건물 내부에 한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지헌·김민지 기자] # 국내 한 부품회사가 무선충전사업에서 철수하면서 2021년 유럽 특허관리금융회사(NPE)인 스크래모지에 무선충전 관련 특허 123건을 약 50억원에 매각했다. 스크래모지는 이 특허들로 미국·독일·일본에서 삼성전자에 소송을 잇달아 제기했는데 관련 요구금액이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헐값’에 매각한 국내 특허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다시 국내기업을 공격하는 ‘불방망이’가 된 것이다.

삼성전자 등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국내 주요 기업들이 정보기술(IT) 수익을 전략적으로 노린 NPE 등 ‘특허 괴물’의 족쇄에 묶여 경영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내년 경제성장 가능성에 대한 비관론이 우세해지는 상황에서, NPE의 특허소송 남발로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NPE의 한국 기업 대상 특허소송 해마다 증가…사나포선 전략 확대

30일 특허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지난 5년간 미국에서 NPE들이 한국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소송은 총 543건에 이른다. 특허소송 분석업체인 ‘RPX 인사이트’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미국 연방지방법원에서 삼성전자가 NPE들로부터 피소당한 건수는 총 208건에 달한다. 추이로는 ▷2018년 37건 ▷2019년 47건 ▷2020년 32건 ▷2021년 52건 ▷2022년(10월 기준) 40건 수준이다.

[123RF]

노키아, 에릭슨, 브리티시텔레콤 등 해외 기업들이 주요 사용하던 특허 전략인 ‘사나포선(Patent Privateering)’이 국내에도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사나포선 전략은 기업이 보유 중이던 특허를 NPE에 매각하고, 클레임이나 소송 등으로 고액의 합의금, 손해배상금이 확보되면 이를 분배해주는 방식을 뜻한다. 최근 사모펀드, 로펌 등 관련 이해관계자가 확대되면서 특허 관련 합의금 요구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합의금 대부분을 특허권자가 아닌 투자업체가 가져간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최근 NPE들이 대형 헤지펀드 등의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추세기 때문에 소송비, 합의금 등 비용뿐 아니라 증거 제출, 증인 출석 등 소송 대응업무 역시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특허권도 재산권이기 때문에 NPE에 매각해 수익화할 순 있다. 그러나 최근 사나포선 전략을 통한 특허소송은 산업계는 물론 소비자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의 고액 합의금, 손해배상액, 천문학적인 소송비용 등이 최종적으로 제품가격에 반영돼 결국 소비자의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평가다.

과거 기업 간 특허소송에서는 협상을 통해 ‘크로스 라이선스(별개의 특허권을 소유한 두 당사자가 상호 개별 사용을 허용하는 합의)’를 맺거나 적정 수준의 합의금을 주고받으며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기존의 경쟁 업체 간 특허소송과 달리 개발·제조·판매 등 실체가 없는 NPE들은 협상없이 곧바로 소송을 통해 판매 금지를 유도하거나 과도한 금액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상대 기업의 경영리스크를 과도하게 가중시키고 있다.

국내 기업 간 ‘진흙탕 싸움’ 가능성도 커져

사나포선 전략은 특허제도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특허 제도의 목적으로 거론되는 발명의 보호·장려와 산업발전 등에 기업들이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업 철수 또는 경영 악화가 예상되는 기업이 사업 분야의 특허를 매각해 최대한 수익을 낼 순 있으나 이 과정에 NPE들이 개입하면서 애초 매각 의도와 무관하게 무분별한 소송이 남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허 분쟁 대신 ‘특허 평화’를 원하던 상대 업체가 똑같은 사나포선 방식으로 반격할 수 있어 국내 기업 간 진흙탕싸움 가능성 역시 거론된다. 실제 최근 일부 정부 출연연구기관 등에서도 사나포선 전략을 추진하고 있어 법적 분쟁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부 예산을 지원받은 출연연구기관으로부터 인텔렉추얼벤처스 등 다수의 NPE가 특허를 양도받아 이를 국내 기업 대상 소송을 제기하며 수익화 역시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해외 NPE 등에 특허를 매각해 국가 핵심 기술 유출 등 국가경쟁력이 약화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신 표준, 방송 규격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특허를 저렴한 가격에 인수한 해외 NPE들은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도 특허소송을 내고 고수익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앞서 한 출연연구기관은 2008년 특허 전문관리기업인 SPH아메리카에 이동통신 관련 특허를 양도했다. 2012년 미국 특허 전문관리기업인 인텔렉추얼벤처스에 다수의 특허를 양도해 수익화했다. 2021년 안승호 전 삼성전자 IP센터장이 설립한 ‘지코아’에 디지털 방송 규격 관련 특허 800여건을, 145억원에 매각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삼성전자 제공]
특허 소송 표적된 韓 기업…정부 지원 시급

미국 내 NPE 특허소송은 국내 기업들에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 법인을 대상으로 한 보호 조치가 시행되며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이 오히려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1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티시 하틀랜드(TC Heartland)’ 판결을 통해 미국 내 특허소송의 관할지를 피고 법인의 설립지로 제한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관할지에서 소송을 제기해온 NPE들의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일례로 애플을 대상으로 특허소송을 제기하려면 애플 소재지인 캘리포니아 법원에 소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조치는 삼성전자 등 비(非)미국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미국 외 기업을 겨냥한 대부분의 NPE 소송은 피고 법인에 불리한 텍사스 동부·서부지법으로 몰리고 있다.

텍사스 동부·서부지법은 원고인 특허권자의 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 특허소송 전문업체 ‘DOAR 컨설팅’ 조사에 따르면 텍사스지역 응답자 중 81%가 “책임을 회피할 수만 있다면 대규모 기술기업들이 불법적으로 기술을 모방하거나 훔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84%가 ‘미국 우선주의’에 찬성했고, 82%가 “외국 기술기업들이 미국 법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응답했다.

한국에 비해 미국은 특허소송비용이 많다. 미국 지방법원 특허 소송비는 판결까지 평균 500만~800만달러, ITC소송은 800만~1000만달러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인 기업이 승소해도 악의적인 소송임을 입증해야 소송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 때문에 기업은 특허 무효 청구 또는 특허 협상으로 소송비용을 줄이려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NPE 소송이 펀드들의 신종 투자처로 부상하며 재판까지 가서 고액의 보상금을 노리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123RF]

업계는 정부가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막대한 소송비용, 과도한 로열티 등으로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우려될뿐더러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는 사회적 비용도 발생한다.

5G·6G, 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 준하는 국내 기업 특허에 대해 정부가 특허 펀드를 조성해 매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나포선 전략에 대한 제재방안을 도입하고 특허관리전문기업(NPE)에 대한 규제법안을 마련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미국은 NPE의 소송 남용을 규제하기 위한 행정조치 및 법안을 발의 중이다. 지난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은 무분별한 특허침해소송으로부터 혁신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 조치 및 의회 입법 권고사항을 공표했다. 이듬해 미국 의회는 소송요건 강화, 패소 시 원고 소송비용 부담 등을 골자로 하는 혁신법을 발의했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는 NPE에 대한 보고서를 지속 발행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FTC에 따르면, NPE가 보유한 라이선스는 전체의 9% 수준임에도 이들이 특허소송으로 기록한 라이선스 매출은 32억달러, 우리 돈 3조5400억원에 달했다. 전체의 80%다.

지식재산전문변호사인 최승재 세종대 법학부 교수는 “한국, 대만 등 IT기술이 강한 기업들이 모인 국가 위주로 NPE들이 특허기술을 확보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며 “NPE들이 특허권리를 행사할 순 있겠지만 권리를 남용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행사되도록 법제화하거나 법 집행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aw@heraldcorp.com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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