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이 지나도 선명한 인식표... 6·25 백마고지 전사자 가족 품으로

김진욱 2022. 11. 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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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잠든 지 70년이 흘렀지만 유해가 품고 있던 인식표는 선명했다.

이에 6·25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용일 이등중사가 7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7월 국유단과 육군 5사단이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발굴한 6·25 전사자 유해가 김 이등중사로 확인됐다고 30일 밝혔다.

당시 9사단은 12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했지만 김 이등중사는 장렬히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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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전사 김용일 이등중사 신원 확인
가슴 쪽에서 이름 각인된 인식표 발굴돼
철모와 전투화 등 생전 착용 모습 그대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이 7월 백마고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은 김용일 이등중사의 인식표. 국방부 제공

흙 속에 잠든 지 70년이 흘렀지만 유해가 품고 있던 인식표는 선명했다. 이에 6·25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용일 이등중사가 7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7월 국유단과 육군 5사단이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발굴한 6·25 전사자 유해가 김 이등중사로 확인됐다고 30일 밝혔다. 고인은 국군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1952년 10월 6~15일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9사단은 12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했지만 김 이등중사는 장렬히 산화했다.

고인은 지난 21일 유해 신원이 확인된 전우인 고 편귀만 하사(한국일보 2022년 11월 22일자 24면)와 같은 참호에서 발견됐다. 고인의 두개골에는 철모, 발 부위 뼈에는 전투화 밑창이, 정강이에서는 고무링이 둘러매어 있는 등 상당수 유품이 생전 착용 모습을 유지했다. 특히 가슴 부위에 모아진 아래팔뼈 안쪽에서 고인의 이름이 각인된 인식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이 7월 백마고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로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고인의 유해는 지난 21일 신원 확인 소식이 전해졌던 고 편귀만 하사와 같은 참호(개인호)에서 70년 동안 함께 있다가 발굴돼 연속으로 신원이 파악됐다. 사진은 김용일(왼쪽) 이등중사와 편귀만 하사의 유해 발굴 당시 모습. 국방부 제공

국유단은 인식표에 각인된 이름과 전사자 명부, 보훈 기록 등을 기초로 유가족을 찾아 친손자 김정덕씨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 정밀 분석을 통해 가족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손자 김씨는 "조부(김 이등중사)는 아버지가 3세 때 입대했다"며 "아버지의 기억에는 없으셨지만 엄청 보고 싶어 하셨는데 손자인 제가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이등중사의 신원확인 통보 및 유해 전달 행사인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이날 경기 부천의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한편, 국유단에 따르면 이번 김 이등중사 신원 확인으로 지난 2000년 유해발굴사업 시작 이후 총 201명의 6·25전쟁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됐다.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유해로는 4번째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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