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싫어!”...2002 한일월드컵 경기 1초도 안 본 박찬욱 사연

김소정 기자 2022. 11. 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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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최고의 축제, 카타르 월드컵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개막부터 아시아 국가들이 축구 강호들을 무너뜨리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며,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축구 팬들은 6시간의 시차에도 불구, 밤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챙겨보고 있다. 축구에 관심 없던 이들도 한국 경기가 있을 때면 TV 앞에 모여 애국심을 분출한다. 이런 가운데 요즘 온라인에서는 “월드컵을 싫어했다”는 박찬욱 영화감독의 일화가 재조명되고 있다.

박찬욱 감독/뉴시스

박 감독은 원래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박 감독에게 축구란 ‘발로 공을 몰아 구멍에 집어넣는 놀이’에 불과했다고. 2002년 온 국민이 축구에 미쳤었던 한일 월드컵 때도 한국 경기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박 감독은 무관심을 넘어 축구, 그리고 월드컵이 싫어지게 됐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박 감독의 에세이 ‘박찬욱의 몽타주’에 자세히 나온다.

“모두가 축구 이야기만 하고, 나하고는 전혀 안 놀아주더라. 재미난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없고, 그 시간에는 무슨 약속도 잡을 수 없었다. 극장에 볼 만한 영화가 안 걸렸다”

심지어 승리에 흥분한 시민들이 박 감독 차 지붕에 올라가 발을 구르고, 경적까지 울려 축구를 ‘경멸’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박 감독은 당시 “고독했다”고 한다. 그는 “학교에서 따 당하는 애들의 심정이 뭔지도 알게 됐다. 친일파의 죄책감이 이랬을까. 부역자의 공포가 이만큼이었을까”라고도 했다. 급기야 박 감독은 ‘나는 월드컵이 싫어요’라고 절규했다가 입이 찢어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 감독은 한국을 잠시 떠나기로 한다. 월드컵 기간에 맞춰서 꼭 안 가도 되는 외국 영화제를 찾아간 것. 그곳은 비교적 축구를 덜 좋아하는 ‘미국’이었다. 귀국하던 날, 박 감독은 공항 로비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이 골든골을 터뜨린 것. 박 감독은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한다.

박 감독은 “집에 오는 길에 마주친 붉은 무리의 눈빛은 살벌했다. ‘대~’ 뭐라고 외칠 때 알맞은 박자로 손뼉을 쳐주지 않으면 몰매를 맞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위안이 됐던 건 아내 역시 축구에 무관심했던 점이다. 박 감독은 아내와의 결속력이 강해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마저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4강전인 독일전을 박 감독 몰래 보고 있던 것이다. 박 감독은 아내에게 “당신을 밸도 없어?” “어떻게 우리를 그토록 괴롭히고 멸시한 저 무리에 가담할 수 있어?”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아내가 월드컵을 챙겨본 이유는 당시 9세였던 외동딸 때문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딸을 가리켜 “월드컵도 안 보는 집 아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댔다고 한다.

박 감독은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항복하기로 했다”며 20년 만에 성당을 찾아 고해성사를 한다.

신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박찬욱 감독 “저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부 “뭐라구욧? 그렇다면 설마 월드컵 경기들은 보셨겠죠?”

박찬욱 감독 “사실은 단 1초도...”

신부 “오 주여”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박 감독 말에 신부는 “이건 그리 쉽게 용서될 사안이 아니군요. 보속으로 월드컵 전 경기의 재방송을 세 번씩 보도록 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박 감독이 월드컵 경기의 재방송을 봤는지는 에세이에 나오진 않는다.

이 글이 공개된 후, 박 감독에게 한통의 전화가 온다. 2002 한일 월드컵 사료편찬위원회의 멤버가 되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이런 자도 하나쯤은 끼워줄 필요가 있다”며 박 감독을 추천했다고 한다.

담당자의 설득으로 박 감독은 결국 한일 월드컵 사료편찬위원회 멤버가 된다. 박 감독은 “그 담당자 아저씨가 어찌나 못살게 구는지 결국 내가 졌다. 여러 차례 회의에 나가야 했다. 저명 인사 여러분이 토론하시는 동안 또다시 고독했다. 회의 자료로 받은 서류에 숱한 낙서를 한 끝에 결국 두꺼운 책 두 권이 출판됐다. 그 책 크레딧에 내 이름 정말 있다.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했다.

박 감독의 ‘웃픈’(웃기고 슬픈) 일화는 최근 월드컵이 개막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축구를 싫어한 보람이 없다”, “시트콤 같다”, “뚝심 대단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한 네티즌들은 박 감독이 신부 말대로 2002 월드컵 경기 재방송을 봤는지, 최근 카타르월드컵 한국 경기를 봤는지도 궁금해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그러나 박 감독은 한국에 없었다.

박 감독 측 관계자는 29일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지금 박찬욱 감독님은 신작 드라마 ‘동조자’ 촬영 차 해외에 계세요”라고 했다. “혹시 또 미국인가요?”라는 질문에 관계자는 “네”라고 답했다. “월드컵을 피해 일부러 또 가신 건가요?”라는 말에 관계자는 웃으며 “아닙니다. 여름부터 미국에서 촬영 중이셨어요”라고 했다. 물론 박 감독이 미국에서 한국 경기를 챙겨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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