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불빛 아래 깔린 상실의 밤들을 비추고 싶었다”
■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출간
어릴적 첫사랑 · 수술후 여행…
느슨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7편
삶 균열속 나아가는 인물 조명
안녕 · 행복 비는 장면 자주 나와
“지나간 한해를 돌아보는 연말
상처를 응시하는 용기 갖기를”
추운데 따뜻하고, 아프지만 괜찮다. 그리고 다정하다. 김금희 작가의 첫 연작 소설이자, 열 번째 책 ‘크리스마스 타일’(창비)을 읽고 나면 이런 말들이 떠오른다. 늘 자신만의 방식으로 먼저 손 내밀어 우리를 위로해 온 김 작가가 크리스마스를 약 한 달 앞두고 선물처럼 반짝이는 책을 가져왔다. 춥고 아픈 마음들이 따뜻해지고 괜찮아지고, 종국엔 우리를 더 다정하게 만드는 이야기. 미세한 간격을 두고 붙어 있는 타일들이 하나의 벽을 이루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삶의 균열과 한계에도 한 방향으로 기꺼이 나아간다. “우리는 무엇도 잃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이라고 한 작가의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타일’은 개인의 삶을 뜻해요. 서로 완벽하게 맞닿아 있지는 않지만, 모두 벽면, 즉 공동체를 지지하고 있죠. 그것을 ‘크리스마스’를 통해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화려한 장식의 전면보다는 그 밑의 그늘을요.” 최근 서면과 전화로 대화를 나눈 김 작가는 이렇게 소설의 집필 의도를 밝혔다.
‘크리스마스 타일’에는 서로 느슨하게, 때로 긴밀하게 연결된 일곱 편의 소설이 담겼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다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첫사랑을 처음 만난 날이기도 하고(‘하바나 눈사람 클럽’), 큰 수술 후 회사를 관두고 떠난 여행지에서 맞이한 기적 같은 날이기도 하고(‘은하의 밤’), 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파티이기도 하고(‘데이, 이브닝, 나이트’), ‘눈이 내리면 그냥 좋은’ 무의식 속 막연한 희망(‘크리스마스에는’) 같은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12월 25일에 우리는 각자 너무 다양한 곳에서 그날을 맞이한다”며 “그냥 그런 크리스마스들이 모인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크리스마스는 한 해가 저물고 스산한 바람이 부는 때에 있어서, 애처롭고 쓸쓸한 감각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데, 이것은 각 인물이 처한 상황과 닮았다. 즉 병으로 몸이 아프고,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회사에서 내몰렸고, 옛 애인과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것 등…. 그러나, 크게 3개의 주제로 구분된 7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자기 상실을 겪고(‘밤’), 상처 극복을 위한 계기를 만나고(‘눈 파티’), 삶을 돌아보며 다시 걷는다(‘하늘 높은 데서는’). 작가는 “그냥 그런” 이라고 했으나,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의 크리스마스는, 그러니까 우리들의 크리스마스는 알록달록한 저마다의 색을 입고 마음속에 각인된다. 작가 역시 소설을 쓰며 몇 번이나 자신의 크리스마스 속으로 붙들려 들어갔다 오곤 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머리맡에 놓아주셨던 1000원, 코코넛 나무에 했던 크리스마스 장식, 학교에서 반강제로 사라고 했던 크리스마스 실 등…. 어렵고 힘들고 난처하고 궁핍했던 기억들이 크리스마스와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은 출간 전 창비 ‘스위치’를 통해 연재됐는데, 작가는 중간쯤 왔을 때부터 성당 미사에 참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의 종교적 의미에 대해 생각했고, 작가로서 그걸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소설에는 누군가의 안녕과 행복, 평안을 비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 장소는 교회나 성당이기도 하고, 등장 인물만의 특별한 어떤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소설은 김 작가만의 성스러운 기도 공간이었을지도. 우리가 이 겨울에,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로 상징되는 한 해의 끝에 품어야 할 마음이 무엇인지 일러주고, 또 기원하니까. 그것은 ‘용기’. 책 속 작가의 말에서 “겨울에 필요한 마음들을 되짚어보며”라고 인사를 전한 김 작가는 “우리는 한 해를 보내면서 어쩔 수 없이 지난 일들을 돌아보게 되는데, 대부분 크고 작게 상처가 남은 자국들이다”라고, “그럼에도 정리하듯 한번 돌아보고 응시하고 다시 앞을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너무 오래 뒤돌아보지는 마시고요, 우리에게는 다시 일 년이 찾아오니까요.”
이번 소설 초판에는 김 작가의 친필이 인쇄된 크리스마스 엽서도 동봉돼 있다. 엽서에서 “정말 수고하셨다”며 명랑한 겨울 인사를 건넨 그는 인터뷰 말미에도 우리들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바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기다리고 믿는 이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어 왔음을 이번 겨울에는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소리도 없이 쌓여서 어느 아침 우리를 와 하고 감탄시키는 눈 풍경들을 마주하게 되시기를.”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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