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실질적 평등을 위한 고용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입력 2022. 11. 30. 09: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천부인권 사상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겨우 300년 전 시민혁명 이후의 일이다. 즉, 18세기 미국 독립혁명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민혁명으로 평등의 개념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출신성분과 계급에 따른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 받고 제도적으로 구속 받았다. 신라의 골품제와 조선말까지 유지된 반상 제도가 그렇고 서양의 귀족과 노예제도가 그랬다. 5,000년 역사의 인도 카스트제도는 1948년 헌법상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끔찍한 인권침해 사건의 근원이다. 신의 머리에서 태어난 상층 브라만과 발에서 나온 하층민은 머리와 발의 기능이 다르듯이 할 일이 달라서 평등할 수 없다는 뿌리 깊은 믿음이 카스트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7%를 차지하고, 그 인도 인구의 약 16%인 2억명이 카스트에도 못 끼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으로서 ‘달리트(Dalit)로 불리는 최하위층이다. 이들은 일종의 움직이는 오염물질처럼 멸시 받았다. 그들은 시체나 오물을 치우는 등 가장 더러운 일을 맡았다. 20세기 중반까지도 그들이 당한 멸시와 비인간적 취급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었다. 그들이 말을 하면 침이 튀어 땅을 오염시킨다 하여 턱받이를 해야 하고, 길에 나가면 몸에 방울을 달아서 다른 사람들이 피할 수 있게 알려줘야 하며, 허리춤에 큰 빗자루를 묶어 달아 걸어간 발자국을 스스로 쓸어 지워야 했다.

이러한 멸시와 천대 속에서 자라난 불가촉천민 중에서 지금도 가장 존경받는 위인은 암베드카르(B. R. Ambedkar, 1891~1956)이다. 그의 명석한 재능을 알아본 어느 후원자 덕분에 미국에 유학하여 존 듀이(John Dewey)로부터 실용주의 사상을 배워 경제학 박사, 그리고 영국에 유학하여 법학박사를 받았다. 그는 인도 독립 후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인도 헌법을 기초할 때 카스트 제도의 폐지를 명문화 시키며 인권운동을 펼쳐 인도 천민들의 리더로 부상하였다.

헌법상 카스트를 폐지 한 후 인도 정부는 천민들의 교육기회 확대를 위해 의대, 법대, 공대 등에 그들의 입학 쿼터(Quota; 할당)를 주고, 공무원 임용에도 쿼터를 신설하여 그들이 정, 관계로도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 결과 불가촉천민 출신 대통령과 총리도 배출하게 되었다. 천민 쿼터는 언뜻 보면 평등권 즉, 기회균등(Equal Opportunity)의 원칙에 배치되는 것으로서 천민 외의 국민들에게 역차별을 준다는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평등권은 현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기본이지만 그 일천한 역사 때문에 아직도 많은 이슈를 양산하는 화두이다. ‘법 앞의 평등(Equality before the Law)’ 이라는 정치적, 형식적 평등권은 제도적으로 이미 확립되었지만,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경제적 평등이라는 실질적 평등의 실현은 세계 각국 정부의 현실적 과제이다. 자본주의는 그 부산물로 빈부격차와 계급 아닌 사회적 약자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이를 보완하고자 각국 정부는 불가촉천민, 소수인종 그리고 여성과 같이 역사상 차별 받아왔던 약자를 동일한 출발선에 가져다 놓고 경쟁을 시작하라는 취지의 제도를 마련했다. 여성할당제나 인도의 천민 쿼터 등이 헌법상 평등권을 실현하는 하나의 기본적 보완 장치로서 ‘기회균등’의 제공이다.

인도에 천민 쿼터가 있다면 미국에는 소수인종과 여성에게 기회균등 부여를 위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있다. 이는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근거하여 고용, 승진 등에서 그들을 우대하는 즉 차별금지의 예외적 사항이다.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전(前) 미 국무장관은 스탠포드 대학 교수로 임용 당시 흑인여성 우대조치 덕을 본 케이스라는 견해도 있다. 우리나라의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여성을 우대하는 조치를 잠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적극적 우대조치의 개념은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과, 1965년 존슨 대통령이 하버드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생긴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족쇄에 발이 묶여 있던 사람을 풀어주고, 당장 정상인과 동일 출발선에서 경주를 시작하라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사실 미국의 노동법은 전통적 페어플레이 정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정규직의 고용 계약은 ‘At-will Employment Doctrine’이라 하여 사용자는 종업원을 언제든지 자유롭게, 특정한 이유 없이도 해고할 수 있다는 원칙에 바탕 한다. ‘At?will’이란 ‘맘대로’라는 뜻이니 흔히 ‘임의고용’이라 번역되는데, 이는 ‘해고 자유의 원칙’을 나타내는 것으로 조지아, 앨라배마 주 등 대부분의 주가 채택한 고용의 기본원칙이다. 따라서 어는 날 갑자기 회사가 어떤 임직원에게 아무런 이유나 예고없이 해고를 통지하면 그것은 즉시 효력을 발생한다. 미국에서 근무 종료 시간 5분전인 4시 55분에 해고 통보를 하고 바로 경비원을 시켜 회사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광경은 흔히 목격되는 일이다. 페어플레이 원칙상 반대로 종업원도 언제든지 회사에 자발적 퇴사를 통보하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즉, 이직 시 후임자를 찾을 시간을 회사에 주지 않고 즉시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임의고용의 원칙에도 몇 가지 제한이 있다. 노동 계약서의 해고 및 자퇴 조항에 별도의 절차와 기간을 정했다면 임의고용의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또 공익상 해고를 제한하는 주법이 있다면 적용되지 않는데, 한국의 초국적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조지아나 앨라배마는 그런 제한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실질적인 해고사유가 불법이면 안된다. 전형적인 불법 해고사유로는 나이, 인종, 피부, 종교, 성별, 임신, 성적 정체성, 성적 취향, 출신지 그리고 장애 등에 기인한 여러가지 형태의 차별 금지 관련법을 위반하는 경우이다. 그런 이유로 해고 했다면 그것은 부당해고(Wrongful Termination)가 되어 종업원은 해고로부터 구제된다.

연방법인 차별금지 관련 법으로는 1964 민권법(Civil Rights Act)을 비롯하여 고용차별연령법(ADEA; 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 장애인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y Act), 동일임금법(EPA; The Equal Pay Act), 재활법(Rehabilitation Act), 임신차별금지법(The Pregnancy Discrimination Act) 그리고 유전적정보차별금지법(The Genetic Information Nondiscrimination Act) 등이 있다. 이러한 차별금지 관련법을 집행하기 위해 1965년 설립된 연방 기관이 평등고용기회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이하 ‘EEOC’라 약칭)이다.

EEOC는 워싱톤 D.C.에 본부를 두고 미국 전역에 51개의 사무실을 가진 조직으로 상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기 5년, 5명의 위원이 있고, 전국에 약 2,700명 직원이 일하는 조직이다. 이 기관은 차별행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의 고발과 구제신청에 대하여 조사하고, 조사 결과 차별행위가 있다면 사용자와의 조정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도록 노력한다. 만일 조정과 합의가 안된다면 EEOC는 고발자를 대리하여 사용자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통계상으로 보면 매년 EEOC에 접수되는 고발은 약 8만여 건에 달하는 데, 그중 약 97%가 차별행위가 없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 그런 경우 고발자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소송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처럼 EEOC는 시정 명령권이나 준사법적 기능은 없으므로 차별 여부의 최종 판정은 법원의 결정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당면하는 EEOC 고발 건은 항상 골칫거리이다. 고용과 승진 등 인사에 있어 한국인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차별 고발과 무능한 현지인 해고가 차별적 인사조치라는 주장이 그런 것들이다. 이에 대비하여 한국인 경영자는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치도록 늘 체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어떤 구체적 사건에서 차별적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미리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균등기회 제공과 차별금지로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인사, 고용 정책이 운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