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칼럼] 민주노총 파업, 법의 틀에서 해결해야

여론독자부 기자 2022. 11.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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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객원교수
30년째 총파업 연례행사 되풀이
'업무개시명령'은 응급처방 그쳐
근원 해결 위해선 별도기구 마련
이해관계자 모여 개선책 마련을
[서울경제]

근로자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노사 갈등을 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노사 관계 선진화란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노사의 의견 불일치를 정해진 제도와 규범에 따라 조정할 능력을 갖췄을 때를 말한다. 노사 관계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고질병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여러 유형의 갈등이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되지 않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집단행동과 힘의 대결로 치닫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는 민주노총의 각종 ‘총파업’과 ‘노동자대회’는 한국 노사 관계의 낙후성을 상징한다.

민주노총은 출발부터 투쟁의 DNA를 갖고 태어났다. 이들은 1980년대 노동자대투쟁에서 태동했고 1990년대 합법화 투쟁을 통해 전국 조직을 구축했다. 19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1년여 만에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들의 요구를 제도적 틀 속에서 관철하기보다 대중 투쟁을 통한 쟁취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지금 벌이고 있는 ‘총파업 총력 투쟁’도 30년 가까이 연례행사처럼 벌여왔던 대정부 투쟁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올해에는 화물연대를 필두로 철도와 지하철, 학교를 비롯한 공공 부문 비정규직 노조 등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여러 투쟁 사업장을 모아 총파업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와의 첫 대결이라는 점에서 민주노총도 투쟁 역량을 총동원했지만 최대 조직인 금속노조나 대부분의 공공기관 노조들은 이번 투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여당 지도부가 모두 나서서 총력 대응하는 이유는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에 따른 산업 피해가 전방위적이기 때문이다. 수출용 컨테이너를 비롯해 시멘트와 철강재의 수송 차질로 산업과 민생 현장에까지 피해가 가중되자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해 시멘트 운송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했다. 명령의 집행은 실무 절차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이 집행하겠지만 오늘 정부와 화물연대의 협상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완전한 파국 전에 한 번의 기회는 남아 있는 셈이다. 정부도 경제 상황을 고려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응급 처방일 뿐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명령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충돌과 명령 불이행에 대한 처벌도 수많은 법적 공방을 수반할 것이다. 화물연대도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기 전에 하루빨리 타협의 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 여당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이미 양보했고 품목 확대는 안 된다고 못 박았기 때문에 이번 협상에서 화물연대에 내줄 선물이 마땅치 않다. 하나의 해법은 3년 연장은 시행하되 일몰 폐지와 품목 확대 등에 관해 별도 기구에서 계속 논의하는 것으로 타협의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화물연대와 국토부만이 아니라 화주와 운송 업체 대표, 고용노동부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해 합리적인 운송료 책정 및 근로시간 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것이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는 근본 해법이다. 이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지 않으려면 노골적인 불법행위나 돌발적인 물리적 충돌이 없어야 한다. 특히 정상 운행 차량에 대해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정부가 철저히 막아야 할 것이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총력 투쟁’을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때 한국의 노사 관계도 비로소 정상화될 수 있다. 민주노총도 내셔널센터로서의 리더십이 갈수록 약화되고 원심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새 정부와의 정면충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지난 주말 서울대병원 노사가 파업을 끝냈듯이 철도와 지하철의 인력 감축 문제나 학교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등에 관해서도 타협의 여지는 충분하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노사 관계까지 힘의 대결 일변도로 치닫는다면 경제적 피해는 막대할 것이다.

정확한 분석과 대처가 필요한 때 ‘노조가 망해야 나라가 산다’식의 무분별한 정치적 공격도 노사 관계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갈등을 겪으며 대화와 타협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선진화의 길이다.

여론독자부 기자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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