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시 및 대산문학상 수상 『가능주의자』 나희덕 “인간중심주의 넘어 새로운 물질과 생명 사유”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2. 11. 3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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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한창이던 어느 날, 시인 나희덕의 눈길이 7, 8년 전쯤 줄이 없는 몰스킨 노트에 써놓은 단어에 꽂혔다. ‘가능주의자.’ 그는 시인으로서 무슨 주의자라고 스스로를 명명하지도, 그렇게 명명되지도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살아왔다. 왜냐하면, 무슨 00주의자라는 말은 앞에 있는 가치를 절대화하면서 여타의 것을 배타적으로 내쫓아버리는,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란, 시적 언어란, 단정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면서 어떤 확정된 진술을 유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온 그였다. 그런데 가능주의자라니. 흠. 생각을 되짚어보니, 만약 어쩔 수 없이 주의자가 돼야 한다면 그나마 가능주의자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라며 써 놓은 것 같았다.
절망과 고통과 비관이 가득한 팬데믹 시대에 가능주의자라도 되려고 시도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옛날 노트를 뒤적이다가 문뜩 생각하게 됐다. 왜냐하면, 팬데믹 시대에 터져나온 탄식도 스탈린 체제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가 축출당한 오시프 만델슈탐의 시 「시대」에 담긴 탄식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누가 너의 동공을 바라보고,/ 두 세기의 척추를/ 피로 붙일 수 있을까?/ 창조자의 피가 지상의 사물에서/ 목구멍으로 솟구치고,/ 식객만이 떨고 있다/ 새로운 날들의 문지방에서.// 피조물은 살아 있는 한/ 끝까지 등뼈를 지고 가야하고/ 파도는 보이지 않는/ 척추로 춤을 춘다./ 아이의 부드러운 연골처럼ㅡ/ 삶의 정상은 다시 한 번/ 어린 지구의 시대를/ 새끼 양처럼 희생양으로 만든다,/ 포로가 된 이 시대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기 위하여,...”(「시대」 부문; 조주관 옮김, 2012)

팬데믹 시대에 어떤 가능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어둠의 시대에 대한 빛의 사유 등이 여러 생각이 결합되면서 시 「가능주의자」가 태어났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그렇다고 제가 나폴레옹처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불가능들로 넘쳐나지요/ 오죽하면 제가 가능주의자라는 말을 만들어냈겠습니까/ 무엇도 가능하지 않는 듯한 이 시대에 말입니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 이 산산조각난 꿈들을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하나요/ 부러진 척추를 끌고 어디까지 가야 하나요/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한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성과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큰 빛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반딧불이처럼 깜빡이며/ 우리가 닿지 못한 빛과 어둠에 대해/ 그 어긋남에 대해/ 말라가는 잉크로나마 써나가려고 합니다//...세상에, 가능주의자라니, 대체 얼마나 가당찮은 꿈인가요”(「가능주의자」 부문)

나 시인은 팬데믹 시대 가능주의자라는 말을 표방하면서라도 조금은 희망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상에 대해 저는 대체로 비관주의자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포기나 방관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불가능성으로 넘쳐나는 이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무엇인가 희미한 가능성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외부의 어떤 강력한 빛에 의해 밝혀질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어둠 자체에서 빛을 발견해내야 하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가 반딧불이처럼 작은 빛을 발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 가능주의자라는 말을 표방하면서라도 조금은 희망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 연말 출간된 나희덕의 아홉 번째 시집 『가능주의자』(문학동네)는 올 초 영랑시문학상에 이어 최근 대산문학상까지 수상하면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시집 가운데 하나가 됐다. 대산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반딧불이처럼 깜빡이며 가 닿아도 좋을 빛과 어둠에 대해, 현실 너머를 사유하는 결연한 목소리로 들려줬다”고 호평했다. 시집 『가능주의자』에는 가시적인 세계로부터 가려진 채 잊혔다가 비로소 소리 높이는 ‘유령’ 같은 존재들과 함께 시대의 다음으로 뻗어나가는 가능성들로서의 시편 52편이 담겨 있다. 팬데믹 이후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물질과 생명에 대한 최전선의 사유가 가득하다.
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팬데믹 이후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물질과 생명을 어떻게 노래했을까. 그의 시 세계는 어디로 향해 나아갈까. 나 시인을 지난 17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다리를 다쳐 반깁스를 한 모습이었다.

시집에는 ‘찢다’와 ‘꿰매다’를 비롯해 ‘흐르다’, ‘지나가다’, ‘줍다’, ‘묻다’ 등 동사를 활용한 동사시편 예닐곱 편이 담겨 있다. 「꿰매다」의 경우 「찢다」와 짝을 이룬 시편. “바닥에는/ 방금 실을 끊어낸 실패가 놓여 있고/ 실패에는 실이 남아 있다// 무언가 열심히 꿰맨다// 바늘이/ 천과 천 사이를 드나드는 동안/ 실패에서 풀려난 실은 한 땀 한 땀 길을 낸다/ 한 걸음 한 걸음 찢어질 길을 꿰매듯// 찢어진 바짓단이든 구멍난 양말이든 떨어진 단추나 후크든/ 조금 해지거나 터진 구멍 잼 아무것도 아니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것 없다고/ 바늘구멍만한 진실은 어디에든 있다고/ 꿰매다 실이 모자라면/ 실패를 집어 올려 새로 꿰면 된다고// 무언가 꿰고 꿰매는 동안에는/ 다정한 이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실패를 갖고 놀던 아이는 보았을까/ 실을 꿰든 엄마를/ 무언가 열심히 꿰매는 엄마를/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마음까지 꿰매주었을까//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fort’와 ‘da’ 사이에서/ 엄마의 사라짐과 나타남 사이에서/ 가까워지는 발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 사이에서// 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실패에는 실이 아직 남아 있고/ 무언가 꿰매는 손등에는 고요가 내려와 반짝이는데”(「꿰매다」 전문)

―꿰맨다는 동사에서 활용, 다양한 이야기와 사유를 그렸는데요.

“이번 시집에 동사를 제목으로 쓴 동사 시편이 6편쯤 됩니다. 이들 시편은 동사 하나를 제 자신에게 툭 던진 뒤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이질적 문장들이 모여 한 편의 시를 이루게 되었어요. 익숙한 시작 방식을 버리고, 경험이 선행하는 게 아니라, 말이 먼저 던져지고 그 말들이 다시 다른 말을 불러오며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했지요. 그래서 한 편의 시에 다소 이질적인 듯한 여러 시공간, 에피소드나 이미지 등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율하는 정도의 역할만 했다고 할까요. 짝을 이루는 시편 「찢다」가 단절과 파열, 상처에 관한 것이라면, 「꿰매다」는 그것을 봉합하고 치유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바느질을 좋아하거든요. 시가 잘 안 되거나 마음이 흩어질 때는 걸레질을 한다거나 연필을 깎는다거나 바느질을 하는 등 손을 움직이는 일을 해요. 한참 걷다 보면 몸의 움직임만 남고 아무 생각 없이 걷게 되는데, 바느질 역시 그렇지요. 꿰매는 일에 집중하다보면 잡다한 생각들이 하나 둘 사라져요. 이렇게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계속 걷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남게 되는 말이나 생각, 감정, 감각들 속에서 시가 나오는 거지요.”

시집에는 빵이나 누룩, 퇴비, 젖소, 매미 등 사물이나 생물을 그린 시편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들 사물과 생물에는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선 성찰과 사유가 들어가 있다. “이 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빵입니다// 비법이 뭐냐구요?/ 매일 반죽을 조금씩 떼어두었다가/ 다음날의 반죽에 섞는 것,/ 발효는 그렇게 은밀히 계승되어왔습니다// 오늘도 빵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빵 속의 터널에서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들은/ 같은 빵을 먹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식구라고 부릅니다//...빵의 분배 역시 마찬가지,/ 파이를 나누는 일에 정해진 규칙이란 없습니다/ 나이프 쥔 사람 마음대로지요/ 그가 눈을 감은 채 칼을 휘두르지 않기만 바랄 수밖에요// 빵에 갇힌 자로서/ 빵의 미래를 어찌 알겠습니까// 눈앞에 빵조각에 몰입할 뿐/ 부드러운 제 살을 황홀하게 먹어들어갈 뿐”(「거대한 빵」 부문)

―마치 빵 속으로 들어가서 시를 쓴 듯한 느낌이 듭니다.

“2012년 영국에서 1년간 살면서 연구년을 보냈어요. 그때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빵집에 갔는데, 누룩을 조금씩 떼서 다음날 반죽에 보태는 것이 몇 백 년을 이어 빵맛을 유지한 그 집의 비결이더군요. 그런 점에서 빵은 작지만 엄청 커지기도 하고, 역사적인 것을 품고 있는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빵은 식탁 위에 놓인 작은 빵일 수도 있지만, 공동체나 한 집단의 경제 윤리나 자본주의 질서와도 연결되어 있지요. 자본주의적 삶에 완전히 동화되기 어려운 시인은 빵 속에 갇혀 있는 존재인 동시에 때로는 빵 밖으로 나와서 빵을 바라보기도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제2부에선 존재하지만 잊힌, 그래서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는 이들을 조명한다. 환경미화원, 노숙인, 생동성 알바, 비전향 장기수, 세월호 및 용산 참사 희생자....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드라이하게, 하지만 서늘하게.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 않는다// 빗자루만 본다/ 대걸레만 본다/ 양동이만 본다// 점점 투명해져간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빗자루에 매달린 유령들처럼/ 구획된 선과 면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는 우리를// 날이 밝기 전부터/ 어둠 속에서 일하는 우리는/ 머리카락도 잡아낼 만큼 어둠에 익숙해진 우리는/ 손과 발 대신 수십 개의 더듬이를 지녔다/ 소리 없이 사라질 준비가 되어 있다//...바닥 아래 바닥이 있고/ 그 아래 바닥이 있고 또다른 바닥이 있고// 계단 위에 계단이 있고/ 그 옆에 창문이 있고 또다른 창문이 있고// 엘리베이터나 자동문이 열려도/ 우리는 말을 하거나 고개를 들지 않는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사람들이 지나가기만 숨죽여 기다린다/ 점점 바닥이 가까워져간다// 온갖 얼굴을 지우는 얼룩들처럼/ 유령들처럼”(「유령들처럼」 부문)

―우리 안의 부조리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예리하고 서글프게 담았는데요.

“지난해 7월 서울대에서 환경미화원 한 분이 극단적 선택을 했어요. 대학에 몸을 담고 있고, 청소하시는 분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지요. 그분들이 걸레질하는 옆을 걸어갈 때 마음이 더 복잡해지고 송구스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환경미화원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세상의 온갖 얼룩을 지우면서도 얼룩처럼 취급당하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 많지요. 그분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시인의 목소리를 내려놓고 그분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기울여보려 했지만, 당사자가 아니기에 어려움과 고민이 많았어요. 그 목소리를 받아 적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거나 대상화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시도 자체가 주제넘은 게 아닌지 조심스럽더군요. 기득권을 전혀 포기하지 않은 채 살면서 이런 문제를 쓰는 것 자체가 위선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초기에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거의 쓰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제 경험을 재현하는 일이 자기표현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점점 제 이야기가 아닌 타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지요. 마치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모습을 비추거나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 다큐멘터리 방식처럼, 시적 대상이 중심이 되고 그들이 스스로 발화하는 방식으로 써나가려 했어요. 퇴고할 때도 시인으로서 주관적인 판단이나 생각을 최대한 걷어내고, 장식이나 수사라고 느껴지는 부문을 계속 지워나갔지요.”

시인은 특히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사회적 참사를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망각과 부조리를 통렬하게 꼬집는다. 시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이 대표적이다. “...한 민간 잠수사는 손목에 자해를 했다// ―문득문득 견딜 수가 없어요./ 손목에 벌레가 스멀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구조를 도왔던 트럭 운전사는 자살을 시도했다// ―눈, 눈동자가, 자꾸만 떠올라요./ 배에 남아있던 유리창 나무 눈동자가.// 친구를 남겨둔 채 구조된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허재강 생일이 내 생일이에요.// ―무엇을 잃었습니까?/ ―모든 걸 잃었어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아이를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울기만 했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출근을 했다/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부문)

―세월호가 희미해져 가는데, 이제 이태원 참사가 터졌습니다.

“어떤 역사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망각해갈 때 그것을 환기하는 것도 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용산 참사도 그렇고, 세월호도 그렇고, 우리는 그들을 너무 일찍 잊어버린 게 아닌지요. 사회적 참사가 터질 때마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피로감과 새로운 재난에 의해 이전의 기억들은 밀려나게 되지요. 세월호에 관해 여러 편을 썼는데, 이 시는 그 흔적과 기억을 잊은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시인은 3부에서 팬데믹이나 기후 위기, 인류세의 문제의식 등 지구와 인류 전체 문제로 시야를 확대한다. 특히 장미나 젖소 등 일상 속에서 접하는 생물에 담긴 지구적 위기의 흔적을 묘파한다. “방금 배달된 장미 한 다발//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설마 이 꽃들이 케냐에서부터 온 것은 아니겠지// 장미 한 다발은/ 기나긴 탄소 발자국을 남겼다, 주로 고속도로에// 장미를 자르고 다듬던 손목들을 떠나/ 냉동 트럭에 실려 오는 동안/ 피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누르다/ 도매상가에 도착했어야 비로소 피어나는 꽃들// 도시 사람들은/ 장미 향기에 섞인 휘발유 냄새를 놓치지 못한다//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아니라/ 7에서 13리터의 물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휘발유가 필요하겠지// 스무 송이의 자연/ 조각난 향기/ 피어나기가 무섭게 말라가는 꽃들// 퇴비 더미가 아니라 소각장에 던져줄 장미 한 다발// 오늘은 보이지 않는 타서 따라가 보자/ 한 다발의 장미가 피고 질 때까지”(「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전문)
―놀랍게도 장미 한 다발에서 기후 위기를 포착했는데요.

“퇴근길에 즐겨 꽃을 사곤 했는데, 케냐에서 재배한 꽃이 미국까지 간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어요. 유통기간이 짧은 화훼산업도 다국적 기업들이 관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소비자는 생산과 유통 과정이 제거된 채 배달되어오는 꽃만 만날 뿐, 그 과정에 물과 석유가 얼마나 쓰였는지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야채 역시 흙 한 톨 묻지 않고 농부의 노동이 지워진 채 공산품처럼 우리 손에 들어오지요. 하지만 상품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어 우리에게 도착한 것인지 그 전체의 과정을 생각하게 되면 소비의 규모나 방식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후로는 꽃 한 다발을 사는 일도 많이 머뭇거리게 되더군요.”

기후 위기를 비롯해 인류와 지구 전체 문제로 한껏 나아갔던 시인은 4부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일상에는 미뤄둔 불행이 일제히 아우성친다. 몇 년 째 암투병 중인 아버지와, 힘들게 병구완하는 가족들.... “여행에서 돌아오자/ 미루어든 불행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벽장문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잡동사니들처럼// 예외적인 날들은 끝났다고/ 그것 보라고/ 이게 바로 도망칠 수 없는 네 몫을 삶이라고/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앰뷸런스의 아버지를 태우고/ 응급실 가는 새벽,/ 비에 젖은 도로 위에는 점멸등이 깜빡거리고/ 브론테 자매가 살았던 목사관에서처럼/ 음울한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폭풍의 언덕에서는/ 불우한 가족사가 그녀의 고장을 먹여 살리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나도 가족사가 깃발처럼 나부꼈다....”(「여행은 끝나고」 부문)

―돌아온 현실이 고통의 가족사가 깃발처럼 나부끼는 전장이라니요.

“아버지는 여러 해 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어요. 동생의 사고와 죽음에 이어, 아버지의 질병과 죽음이, 저의 가족사를 깃발처럼 나부끼게 했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가 혼자 남게 되었고, 지금은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로 이직해 엄마와 함께 살고 있어요. 장녀로서 어깨가 무거울 때도 있지만, 엄마와 저와 딸, 이렇게 여자 삼대가 서로 격려하며 지내는 나날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두 개의 문학상을 안긴 이번 시집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많은 작가들이 처음에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문학을 시작합니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이 이런 사람이고, 자신 속에 이런 생각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니까요. 하지만 저의 경우 점점 나라는 존재를 알 수 없고, 규정된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 이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조금은 저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 같은 것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의 내면에 대한 탐구보다는 세계의 위기와 고통에 대해 좀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고요. 물론 그 생각이나 발견 역시 실존적 체화의 과정을 겪어야만 시로 쓸 수 있지요.”

문학청년이었던 윤리 선생은 교실에 들어오더니 칠판에 한국 현대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였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우리가 물이 되어」 부문)

책 읽기를 좋아하던 중학교 2학년생 나희덕에게 강은교의 시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는 “전율”했다. 어릴 적 논산의 보육원 ‘에덴원’에서 총무로 일했던 어머니는 그때 서울 면목동의 보육원 ‘애향원’ 총무로서 여전히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윤리 선생은 다른 시들도 여럿 소개해줬다.

윤리 선생이 들고 있는 시집을 눈여겨봤던 그는 시내 서점에 나가서 돈을 주고 처음으로 시집을 샀다. 강은교의 시집 『풀잎』이었다.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그는 교과서 밖의 당대 시들을 빨리 접촉했고, 교과서나 수업에서 느끼지 못하는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일찍이 느끼고 있었다. 강은교에서 시작된 시 읽기는 중고등학교에서도 이어져 민음사와 창비, 문지 시선집 시리즈로 확대됐다. 도서관에 시집이 거의 없는데다가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는 한 시간씩 버스로 타고 종로서적에 가곤 했다. 시집 코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시집을 읽었다.

시집을 즐겨 읽던 나희덕은 중3 때부터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쁜 노트에 자신만의 필체를 만들기 위한 듯, 멋진 글씨로 시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다. 좋은 시를 만나면 적어놓기도 했다. 시험이 끝난 뒤나 방학 때면 밤늦게까지 집에서 글이나 시를 썼다. 시인 나희덕의 문학 원점이었다.

“청소년기에 기성세대에 대해 느끼는 분노나 갈등이 많았는데, 그걸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통해 내면으로 삭히는 편이었어요. 당시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저를 말이 없지만 조숙한 애어른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생각이 많은 애였던 것 같아요. 문학을 비교적 일찍 접한 것이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저의 인격을 다듬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는 시인이나 작가가 아닌 국어학자가 되기 위해 1984년 연세대 국문과를 진학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특정 사안에 대해 감정을 이입시켜 사유하는 정서적인 인간이고, 작은 일에도 잘 울고 감정 같은 것들의 파고가 깊은 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2학년 때 연세문학회에 들어가 문학 공부를 했다.

대학 시절에도 그는 시가 좋아서 시를 꾸준히 썼다. 이때 그에게 시는,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쓴 게 아니라, 일기를 긴장감 있게 쓰자는, 어떻게 보면 내면을 조금 색다르게 정리하는 매개체였다. 졸업할 무렵 거의 시집 한 권 분량의 시가 모였지만 투고하지 않은 이유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원의 창현고 국어 교사가 됐다. 전교조 바람과 여전히 답답한 사회 현실 속에서 시를 꾸준히 썼다. 그는 이때 처음으로 시를 같이 읽는 독자가 열 명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신춘문예에 응모하게 됐다.

1966년 논산에서 태어난 나희덕은 시 「뿌리에게」로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시집 『뿌리에게』(1991),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1994), 『그곳이 멀지 않다』(2004), 『어두워진다는 것』(2001), 『사라진 손바닥』(2004), 『야생사과』(2009),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2014), 『그녀에게』(2015), 『파일명 서정시』(2018) 등을 펴냈다.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자들을 위해 시 세계를 조금 소개해주다면요.

“저는 꽤 오랫동안 자연친화적 서정시, 내면적 절제와 균형, 여성적 감수성이나 모성성, 연민과 사랑 등 타자와 조화와 합일을 추구하고 세계의 고통을 관조하는 시인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초기의 서정적인 시들을 좋아하고, 교과서에도 실린 시들도 주로 초기 시들이지요. 하지만 생활인으로서 인생의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 서른다섯 살에 출간한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을 분기점으로 빛이나 생명력의 세계보다는 어둠과 절망, 고통이 주조를 이루게 되었어요. 개인적 고통뿐 아니라 시대적인 어둠과 폭력을 대면하기도 했지요. 대학의 권력구조와 싸우기도 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권력의 감찰과 배제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파일명 서정시』). 의도된 변화라기보다는 생존의 몸부림을 겪으면서 시 세계 역시 많이 달라진 셈이지요. 가보지 않은 곳으로 한두 걸음이라도 나아가자 했는데, 첫 시집과 지금 시집을 비교해 보면 많이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미학적 실패를 겪거나 어설픈 실험이 되더라도, 같은 것을 반복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다른 지점을 향해서 걸어 가보자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뚜렷하지 않아도 삶의 실존을 한 발씩 한 발씩 움직여 나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직한 변화가 가장 확실한 변화라고 여기면서요.”

그는 이 대목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Louise Elisabeth Glück)이 제시한 분석 틀을 자신에게 적용해 설명하기도 했다. “글릭은 모든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뒤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 아니면 계속 움직이려는 사람들과, 달리던 궤도에서 멈추길 원하는 사람들 두 부류로 나뉜다고 했습니다. 저는 초기에는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시인,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시를 써온 시인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과거 기억이나 되새김질, 경험의 재생산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런 존재와 세계를 향해서 계속 움직이려고 합니다. 지금은 바깥을 향해 나아가는 시인이 됐는데, 시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조용하고 나지막한 시를 주로 썼지만, 지금은 거대 담론이나 시대적 문제도 툭툭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시 쓰기의 방법이 원칙, 노하우가 있는지요.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확언을 유보하고 다양하고 모순된 것들이 공존하는, 그래서 논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논리를 넘어선 차원에서 사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겹눈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존 키츠가 말한 ‘부정적 수용 능력(Negative Capability)’처럼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능력 말이지요. 그러려면 이분법적인 시선을 넘어 어떤 집단이나 이데올로기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는, 수많은 견해 사이를 교차하고 유동하는 시선을 가져야 하는데요. 때로는 회색인이나 무책임한 관찰자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유동적 시선과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요. 진리는 이것이다, 라고 정의하는 순간 진리가 떠나게 되고, 어느 하나를 진리로 확정하는 순간 다른 진실들이 묻혀버리고 축출되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 나오는 것처럼 전짓불을 들이대듯 너의 정체는 뭐냐, 이거냐 저거냐, 선명하게 답하기를 요구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복잡하고 입체적인 진실을 제대로 포착하거나 그려내기 어려워지지요.”

참고로, 그는 부지런히 메모를 한다. 보통 세 종류의 노트를 쓴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만난 인상적인 구절이나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대목을 적는 노트와, 생활 경험이나 강의를 듣다가 필기하는 노트와, 시와 연관된 생각이나 시상을 적어놓는 아무 줄이 없는 몰스킨 노트를. 아마 모두 시를 위한 일일 것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통과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의 계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물질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들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고요. 다음 시집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 바치고 싶어요. 시집을 내 후로 인간이 아닌 존재, 비인간, 동물, 식물, 사물, 미생물 존재들에 대한 시를 쓰고 있는데요. 이 흐름이 시집 전체로 확장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요. 인간의 시선을 괄호 안에 넣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대해 배우고 좀 다른 시선을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인터뷰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점심시간을 놓친 나 시인과 기자는 사무실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반주를 곁들여 점심을 했다. “어릴 적 말이 없는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시(인)의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새 외향적인 면도 많이 생겼고, 호기심도 많아졌어요.” 그는 세상 이야기부터 시작해, 문단과 문학의 세계를 가로지르고, 시인의 삶 이야기까지 자주 왔다갔다. “시를 쓰면서 제가 한 인간으로서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내향적인 자아가 세상을 향해서 자신을 계속 열어갈 수 있는 힘을 문학이 저에게 실어준 것 같습니다.”

술이 몇 순배 들어가자,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해, 시의 기반이자 탯줄이 된 삶에 대해, 그리고 삶에 있을 수밖에 없는 곡절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이야기는 때론 21세기에서 20세기로 거꾸러 흘러갔고, 서울에서 멀리 광주로 내려가기도 했다. 이야기가 변속을 거듭할 때마다, 기자는 질문의 엑셀을 밟고 있었으니. 그러나 저러나, 시인은 그날 이야기했던가 안했던가, 별이라거나 반딧불이를.... “염포에 저녁이 오고/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고/ 밤하늘에는 은하수도 물소리를 내고/ 바닷가에 서 있던 우리도/ 멀리서 보면 몇 개의 반딧불이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서로를 맴돌며 희미한 빛을 뿌리는”(「차갑고 둥근 빛」 부문)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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