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현실보다 더 웃긴 ‘몰리에르 통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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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연극 <스카팽> 은 예술연극이되 '본격 코미디물'이다. 스카팽>
프랑스인에게 몰리에르는 영국인에게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상이다.
가발에 가면을 쓰고 붉은 옷을 입은 '작가 몰리에르'는 통통 튀는 즉흥 대사를 남발하는데, 색다른 웃음을 자아내는 몸짓과 대사들이 극에 현실감을 불어넣으며 현재성을 부여한다.
몰리에르가 "연결해~"라고 외치며 극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관객들은 '아 이것은 연극이었지'라고 새삼 의식하며 극에 거리를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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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연극 <스카팽>은 예술연극이되 ‘본격 코미디물’이다. 관객을 웃기려 작정한 듯 곳곳에 ‘웃음 유발 장치’를 장착했다. 숨넘어갈 듯한 속사포 대사들부터 귀에 착착 감긴다. 표정과 몸짓으로 말하는 ‘신체극’ 요소는 웃음에 질감을 더한다. ‘희극의 대가’ 몰리에르 원작이니 재미 빼놓으면 껍데기. 몰리에르(1622~1673) 탄생 400돌을 기념하는 무대다. 프랑스인에게 몰리에르는 영국인에게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상이다. 프랑스 국립극단을 ‘몰리에르의 집’이라고 부르는 데서 그 무게가 잘 드러난다.
상류층 부모끼리 결정한 결혼, 이를 깨려는 자녀들, 그리고 이들을 돕는 ‘호언장담 해결사’ 하인 스카팽의 이야기다. 신분과 출생의 비밀이 얽힌 정략결혼을 코믹하게 다룬 ‘좌충우돌 막장 통속극’에 가깝다. 하지만 단순히 배꼽을 잡게 하는 데서 그친다면 이 작품이 지닌 생명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원작 <스카팽의 간계> 자체가 상류층에 대한 풍자와 조롱을 뼈대로 한 작품이다.
낄낄대게 하는 장면들 사이사이 나오는 짧은 대사들이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 현실에 일침을 날린다. 극 중에서 ‘재벌 사모님’이 분노할 때마다 내지르는 괴성은 ‘갑질’로 공분을 산 어느 재벌 오너 일가의 녹취 파일에서 따온 음성. 어느 ‘높으신 분’의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 덕분에 이제는 ‘밈’이 돼버린 ‘멤버 유지(Yuji)’라는 단어도 살짝 등장한다. 가수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를 패러디한 대사도 웃음에 풍미를 가미한다. 원작의 뼈대를 살리되 요즘의 현실을 반영한 각색의 힘이다.
원작에 없는 등장인물인 ‘작가 몰리에르’는 이 연극의 핵심 인물. 무대를 오르내리는 해설자로 등장해 극의 진행에 수시로 개입하며 극을 이끌어 간다. 가발에 가면을 쓰고 붉은 옷을 입은 ‘작가 몰리에르’는 통통 튀는 즉흥 대사를 남발하는데, 색다른 웃음을 자아내는 몸짓과 대사들이 극에 현실감을 불어넣으며 현재성을 부여한다. 몰리에르가 “연결해~”라고 외치며 극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관객들은 ‘아 이것은 연극이었지’라고 새삼 의식하며 극에 거리를 두게 된다.
작곡, 편곡에도 능해 뮤지컬과 음악극에서도 재능을 발휘해온 서울예대 교수 임도완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2019년, 2020년에 이어 이번이 ‘3연’째다. 2020년엔 서울 명동예술극장 화재로 조기에 종연됐다. 국립극단이 지난 1년 동안 영상으로 올린 연극 17편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이 <스카팽>이었다. 다음달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어진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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