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파헤친 역작들, 성북동 예술거리 수놓다

노형석 2022. 11. 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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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각미술계에서 형상과 형체 너머의 본질을 찾는 구도자의 면모를 아로새겨온 조각가 정현(66) 작가의 작품들이 서울 성북동 문화의 거리를 수놓고 있다.

조각가로 입문한 이래 인간 존재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데 몰입해온 정 작가는 작품을 빚어내기 위해 험하고 거친 재료만 골라서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폐기물이나 산업적 재료는 요즘 다른 현대작가들도 활용하는 것들이지만, 정현 작가는 사실적 형상을 빚어내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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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정현 전시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 차린 정현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초상’ 전시 현장. 작가가 90년대 작업한 인물 두상 작업이 왼쪽에 놓여있고, 안쪽으로 강원도 고성 산불 현장에서 가져온 불탄 나무둥치들로 작업한 설치작품 ‘무제’가 보인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국내 조각미술계에서 형상과 형체 너머의 본질을 찾는 구도자의 면모를 아로새겨온 조각가 정현(66) 작가의 작품들이 서울 성북동 문화의 거리를 수놓고 있다. 지난달 초부터 성북구립미술관 안팎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시간의 초상:정현’의 전시 현장이다.

조각가로 입문한 이래 인간 존재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데 몰입해온 정 작가는 작품을 빚어내기 위해 험하고 거친 재료만 골라서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타고 짓눌린 나뭇조각이나 녹슨 못, 철과 콘크리트 덩어리, 아스팔트 조각 등의 산업폐기물들을 구해서 작업한다. 폐기물이나 산업적 재료는 요즘 다른 현대작가들도 활용하는 것들이지만, 정현 작가는 사실적 형상을 빚어내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되려 재료가 작가의 눈에 띄기까지 겪은 보이지 않은 시련 혹은 변고의 역사를 드러내어 작품화시킨다는 점에서 독창적이고 차별화되는 작업의 특장이 번득인다.

유리판 위에 콜타르로 그린 각진 얼굴과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1980년대 후반부의 반추상화된 인체 덩어리상이 전시장 들머리에 들어선 이번 개인전 또한 이런 작가만의 작업적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주는 신작과 구작들의 다채로운 모음들로 꾸려졌다. 1980년대 후반의 초기작부터 2022년 최신작까지 미공개작을 포함한 조각·설치 84점과 드로잉 등 100여점의 작품을 내놓았는데, 약 30여년의 작품 여정을 망라한 큰 전시회가 되었다.

특히 전시장 앞부분에 3단의 앵글 선반 위에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작가가 석고와 아스콘 등으로 작업한 사람 얼굴의 두상들을 차례로 놓은 부분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구체적인 사실적 형상에서 유학 시절 새로운 상상력과 시적 감성으로 굳은 뇌를 깨우는 고행을 거듭하면서 점차 세공을 줄이고 덩어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툭툭 깨고 치고 붙여 나가면서 추상과 구상의 새로운 경계를 터 가는 작가 의식의 변화 과정을 읽을 수 있다.

강원도 고성 산불 현장에서 가져온 불탄 나뭇등걸들을 모아 구성한 대형 설치 조형물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꼽을만하다. 작가의 수공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 현장에서 나무들이 겪은 시련을 작가의 안목을 통해 굳건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최근의 작업 구도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미술관 밖 거리갤러리에서는 철 못을 잔뜩 박아 포플러나무처럼 형상화한 기둥조형물과 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금속제 상체를 붙인 침목 인간 신작들을 은행 낙엽이 흩뿌려진 가로의 바닥 풍경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인간이란 화두를 줄곧 붙들어온 작가의 열정을 가을의 서정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전시 마당이다. 내달 4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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