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출연자에 다양성 필요한 건 ‘올바름’ 때문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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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방송에서 공동으로 제작했던 시사 프로그램에 한동안 사회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한국방송 성평등센터와 공영미디어연구소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방송통신위원회의 '미디어 다양성 조사' 자료와 자사 시사교양 프로그램 방영분을 대상으로 실시한 다양성 평가 결과를 지난 24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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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방송에서 공동으로 제작했던 시사 프로그램에 한동안 사회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방송 제작 현장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는데 메이크업을 담당하던 30대 스태프와 나눈 대화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내가 참여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프로그램 제작에 동참했지만 정작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시사 프로그램은 주제나 포맷 등 모든 측면에서 자신과는 상관없는 프로그램으로 여겨졌고, 무엇보다 남성이 시청해야 할 장르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사회자로 참여하면서부터 왠지 자신도 시청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 번씩 보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자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프로그램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와 나눈 대화는 미디어 다양성에 관한 추상적인 나의 생각을 구체적인 직접 체험으로 바꾸어 주었다. 미디어 다양성을 ‘정치적 올바름’ 차원에서 접근했던 내게 단지 당위적인 개념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시청자를 유인하는 방송사의 실질적인 비즈니스 전략 차원에서도 다양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던 것이다.
오래전 기억이 새삼 떠오른 것은 최근 <한국방송>(KBS)이 공영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자사 콘텐츠를 대상으로 실시한 다양성 분석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한국방송 성평등센터와 공영미디어연구소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방송통신위원회의 ‘미디어 다양성 조사’ 자료와 자사 시사교양 프로그램 방영분을 대상으로 실시한 다양성 평가 결과를 지난 24일 공개했다. 분석결과 한국방송 뉴스에 재현되는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50~60대 남성’들의 사회였다. 뉴스에 등장하는 인물의 남녀 구성비가 3 대 1로 남성에 치중돼 있었고, 연령별로는 50~69살 남성이 다수를 차지했다. 비교적 고른 성비를 보인 드라마와 달리 유독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50~60대 남성’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전문가 정보원이 주로 남성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의식은 <티브이엔>(tvN)의 신규 프로그램을 비평하는 기고문에서도 나왔다. 지식 예능 시리즈를 표방하며 인기를 끌었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여섯번째 번외(spin-off)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알쓸인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에 여성 패널의 참여가 미흡하다는 (<한겨레> 11월26일치) 지적이었다.
다양성 부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올해 초 영국, 미국, 독일,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뉴스 미디어에 나타난 인종과 리더십’ 결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됐다. 주로 인종적 문제였는데 조사대상 100개 미디어 브랜드 중 21%의 미디어에서만 비백인 에디터(뉴스보도의 의사결정권자)가 활동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남아공을 제외하면 이 비율은 더 급격히 떨어져 인구 구성비로는 31%가 비백인인데도 단지 8%만이 비백인 편집자였다. 더 놀라운 것은 브라질과 독일의 경우 비백인 편집자가 아예 한명도 없다는 점이다.
늦었지만 한국방송의 다양성 제고 노력에 응원을 보내며 더 많은 방송사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주기 기대한다. 정치적 올바름이어서 만이 아니라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연결고리가 틀림없이 될 것이 때문이어서다.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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