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산] 김 국수·조 제비(조훈현 9단), 노고단산장에 오르다

故 김근원 2022. 11. 3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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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촬영에 함태식(당시 노고단산장 지기)이 없었다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바둑에도 조예가 깊었던 안창근이 한국기원에 자주 드나들면서 당시 바둑 최고수였던 김인 국수國手를 비롯해 조훈현 국수도 산으로 끌어들인 일이다.

그들은 전국의 산을 나와 함께하면서 사진 촬영을 무수히 도와주었다.

-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사진가 김근원 선생의 유고 산악사진집 <산의 기억(열화당)> 의 일부 사진을 발췌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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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노고단산장의 바둑 최고수들
산장에서 커피로 건배하는 함태식 선생(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바둑계 인물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김인, 안창근. 앞줄 오른쪽이 조훈현. 지리산 노고단산장. 1982. 5.

지리산 촬영에 함태식(당시 노고단산장 지기)이 없었다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늘 하는 말이 "나 같은 사람이 김근원처럼 술 못 먹는 사람을 알게 된 건 크나큰 실수"라며 주위 사람을 웃겼다. -중략- 설악산 권금성산장의 유창서를 통해 서울상대를 졸업한 기업가 안창근을 소개 받았는데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바둑에도 조예가 깊었던 안창근이 한국기원에 자주 드나들면서 당시 바둑 최고수였던 김인 국수國手를 비롯해 조훈현 국수도 산으로 끌어들인 일이다. 조 국수는 바둑을 위한 체력과 정신력 단련에 등산만 한 좋은 운동이 없다면서 함께 산을 다니게 되었다. 그들은 전국의 산을 나와 함께하면서 사진 촬영을 무수히 도와주었다.

-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사진가 김근원 선생의 유고 산악사진집 <산의 기억(열화당)>의 일부 사진을 발췌해 소개한다. 김근원 선생(1922~2000)이 남긴 30만 점의 사진 중에서 아들 김상훈씨가 386점을 엄선해 <산의 기억>에 담았다. 1950년대부터 담아낸 사진은 산악계의 소중한 유산이자 걸작이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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