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허리 강원 백두대간 대탐사] 29. 민족영산 태백산

안의호 2022. 11.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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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중추 ‘태백산’ 봉우리 마다 이야기·전설 한가득
영봉 ‘천왕단’ 민족영산 이름값 톡톡
치마로 돌 날라 축조 마고할미 전설
한말 의병장 신돌석 장군 천제 봉행
예부터 당골 무속인 모여 마을 형성
“전국서 태백산 단군성전 들러 인사
민속종교 제도적인 뒷받침” 주장도
태백산은 옛 삼한시대부터 천제를 봉행하던 우리민족이 신성스럽게 생각하던 지금도 매년 개천절에 천제를 봉행하고 있는 곳이다. 태백산의 겨울 풍경.

아! 백두대간

태백시의 지명 유래기도 한 태백산은 강원도와 경상도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백두대간의 중추이자 모산이다. 해발 1567m의 태백산은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도 거론된 ‘태백(太白)’이라는 이름을 지닌 백두산을 포함한 전국 명산 중 한 곳으로 신라시대 때부터 천제를 봉행하던 곳이다. 산 정상에 위치한 천제단과 주변의 당골, 산제당골, 소도동 등 지명에서도 보듯 산 자체가 품고 있는 신령한 기운 때문에 많은 무속인과 민족종교인들이 신성시하는 산이기도 하다. 또한 해발고도 1567m의 만만치 않은 높이에도 도시 전체 해발고도가 902m인 태백지역의 특성상 출발지점 자체 고도가 높아 노약자도 산책을 하듯 산에 오르는 등산명소이기도 하다.

태백산을 이루는 주요 봉우리와 천제단

태백산은 천제단이 있는 영봉을 비롯해 문수봉, 장군봉, 무쇠봉 등 비등비등한 높이의 봉우리로 형성돼 있다. 각 봉우리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어 영산에 자리잡은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악인들이 태백산에 오면 발걸음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운이 좋아 산에서 태백산을 잘 아는 지역 관계자라도 만나면 태백산은 이야기책으로 변한다.

천제를 봉행하는 영봉의 천왕단 내력부터가 재미있다. 전설에 의하면 태고적 마고할미가 치마로 돌을 날라 천왕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옛날 경북 봉화군에 있던 부족국가인 구령국과 소라국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 천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있으며 신라 일성왕이 이곳에서 천제를 봉행했다는 역사기록이 남아있다. 고려, 조선시대에도 지방관리와 백성들이 이곳에서 천제를 올렸고 한말에는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백마를 잡아 이곳에서 천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천제단에서 매년 10월 3일 태백문화원에서 천제를 봉행하고 있다.

영봉 북쪽방면으로 300여m 쯤 떨어진 곳에 장군봉이 자리잡고 있다. 해발 1567m로 태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이곳에도 사각형 형태의 제단이 있는데 봉우리 이름을 따 장군단이라고 부른다. 장군봉은 뚝봉이라고도 불리는데 민간전승으로는 태백산에서 가장 불거진 봉우리라는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치우천왕(하늘 장군)의 다른 이름인 둑신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경쟁한다. 태백지역에서는 영봉의 천왕단과 부소단, 장군봉의 장군단을 함께 일컬어 천제단이라고 부르는데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리 전통철학에 따라 영봉의 천왕단은 하늘신에게, 장군단은 땅의신에게 제사를 봉행한 곳이 아닌가 싶은데 장군단과 관련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영봉과 문수봉 사이에 무쇠봉이 위치하고 있다. 옛날 경상도 사람들이 천제를 올리기 위해 위해 이 봉우리를 지났다고 한다. 단군의 아들 부소가 쌓았다는 부소단이 무쇠봉 인근에 위치해 있어 부쇠봉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영산으로서의 태백산은 문수봉이라는 이름에서 정점을 이룬다.

불교신 중 하나인 문수보살이 현현한 곳이라는 전설과 이곳의 바위로 문수보살상을 조성했다는 전설이 함께 전한다. 문수봉 정상에는 많은 돌무더기가 있어 이런 전설이 남은 듯한데 태백산이라는 이름은 문수봉의 흰바위에서 나왔다는 향토기록도 있다.

당골과 소도동, 그리고 민간신앙

제정일치 사회였던 삼한시대에는 매년 5월과 10월 두차례씩 천제를 봉행했다. 당시 제사를 올리던 장소를 소도(蘇塗)라 했는데 삼한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서(魏書) 한전(韓傳)에 “(삼한 사람은)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라 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최명식 태백문화원장은 “태백시의 행정동명인 문곡소도동의 소도(所道)는 한자는 다르지만 삼한시대부터 태백산을 신성시했던 흔적으로 봐도 무방하다”며 “태백문화원에서 매년 봉행하는 태백산 천제의 역사성은 옛 문헌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태백산의 신성(神聖)에 대한 믿음 때문에 태백산 주변의 골에는 예부터 많은 민간신앙인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 태백산과 연결되는 가장 큰 골짜기인 당골의 경우 지난 1989년 태백산도립공원(2016년 국립공원으로 승격)으로 지정하면서 정리하기까지 많은 산당이 위치해 있었다 한다. 예전엔 태백산사라는 사당이 있었고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민족시조인 단군을 모시는 단군성전(檀君聖殿)을 당골에 건립해 지금도 매년 10월 개천절 단군제례를 봉행하고 있다. 당골을 지나 태백산으로 오르는 9부 능선쯤에는 태백산신이 된 단종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단종비각도 자리잡고 있다. 탄허스님의 친필 현판글씨가 있는 단종비각은 태백산 산신령이 된 단종을 몸주로 모시던 한 무당이 한국전쟁이 끝난 뒤 세상이 어수선하던 1955년에 신도들과 함께 건립했다고 한다. 도립공원을 정비하던 무렵 당골에서 쫓겨난 무속인들은 지금도 태백산 자락에서 소규모 신당과 기도처를 두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최소 30곳 이상은 될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당골에서 만난 한 무속인은 “신내림을 받은 전국의 무속인들은 몸주와는 관계없이 반드시 태백산 당골을 방문해 단군성전에 들러 인사를 하고 간다”며 “태백산은 이 나라 최고 할아버지가 계신 자리여서 할아버지가 허락을 하지 않으시면 무속생활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무속인들은 가장 좋은 제물을 신에게 바치려하기 때문에 상인들이 품질 좋은 물건을 납품할 경우 가격흥정도 하지 않고 현금으로 구입하는 등 지역 상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도 민족영산 태백산 일원에서 무속인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무속인은 “우리나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생의 모든 과정이 무속신앙과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얽혀있지만 제도적인 교육과정을 거쳐 종교지도자를 육성하는 외래종교와 비교하다 보니 미신행위로 치부되고 있다”며 “태백일원에 무속인을 재교육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마련하는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의호 eunsol@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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