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25.영월 신광방앗간

방기준 2022. 11.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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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참기름 향 ‘솔솔’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 ‘듬뿍’
영월읍 덕포시장길 50년 터줏대감
시부모께 물려받아 ‘3대째 운영’
쌀가루·고춧가루 등 직접 빻아
맛·서비스 ‘정직한 수량’ 호평
1990년 침수 피해 등 위기를 기회로
과거 힘든 시기 단골손님 덕분에 극복
“힘이 닿는 한 방앗간 명맥 유지 지속”
▲신순자 대표와 맏딸 미화씨가 가래떡용 쌀가루와 고춧가루를 빻고 있다.

휴대전화나 SNS가 발전하기 오래 전 온갖 수다(?)를 떨면서 안부를 묻고 대소사를 논하던 소통 공간이 있다면 무엇보다 방앗간을 꼽을 수 있겠다. 지금이야 손쉽게 대형마트에서 제사음식을 비롯해 명절에 필요한 성수품까지 모두 구입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방앗간을 거쳐야만 했다.

영월읍 덕포시장길 32-8의 신광방앗간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방앗간 중 한 곳이다. 1972년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딱 50년째 운영중이다. 현재 가게 운영에 엄성호(74)·신순자(66) 부부와 딸 미화(47)씨가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시부모에 이어 엄씨 부부와 딸이 함께 하니 명분상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현재 실질적인 주인은 부인 신씨다. 방앗간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월읍 삼옥리 출신의 신씨는 방앗간이 문을 연지 이듬해인 1973년에 엄 씨 집안으로 시집을 왔다. 당시 나이 19세. 아무런 세상 물정을 모르고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신씨는 기겁(?)을 했다. 시부모와 8남매 자녀들 중 남편이 맏이였으며 시할머니까지 함께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대식구를 거느린 시집살이는 고달프기가 그지 없었다. 시부모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방앗간 일을 열심히 배우고 뒷정리를 마칠 때면 자정이 되기 일쑤였다.

▲신광방앗간 신순자·엄미화 모녀

가래떡 주문이 들어 오면 무거운 쌀가마니도 함께 거들어 들고 기름을 짜기 위해 방문한 손님의 참깨와 뜰깨를 깨끗하게 씻고 볶는 한편 고춧가루를 빻는 과정에서는 매운 냄새에 콧물과 눈물을 모두 흘려야 했다.

이 와중에 바쁜 시부모 대신 시동생과 시누이들의 일상생활도 건사하느라 깨소금 냄새 솔솔 나는 신혼생활은 대문 밖 남의 일이었고 단지 열심히 살 생각 밖에 없었다.

점차 방앗간 일에 익숙해져 가던 1990년에는 대홍수가 나 덕포제방이 범람하면서 방앗간 주변 덕포리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겨 침수 피해를 당했다. 그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서 벌어 놓은 돈과 은행에서 돈을 빌려 철거한 방앗간 자리에 세운 번듯한 2층 신식 건물에 입주할 때는 침수 피해로 고생한 기억보다는 신바람이 나기도 했다.

시부모는 1993년에 이르자 맏며느리 신씨의 지극 정성과 노력을 믿고 본인들이 20여년을 일군 가업을 승계했다.

어엿한 주인이 된 신씨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단골 손님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들로부터 “다른 방앗갓 보다 맛나고 친절하다, 절대 수량을 속이지 않는다”는 등의 호평을 받으면 없던 힘도 샘솟으며 지친 일상의 에너지를 충전했다.

소중한 3남매 자식들도 아무 탈없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돈을 번다는 생각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을 계속 유지하자 가게는 날로 번성해 갔다.

그러다가 10여년 전 남편 엄씨의 허리에 탈이 생기면서 방앗간에서의 아내 신씨 존재감(?)은 더욱 높아졌다. 온전히 방앗간 운영은 신 씨 몫이 된 셈이다.

다행히 시부모 때에 들여 놓은 분쇄기와 제분기·돌로라 등의 낡은 기계들을 모두 교체해 놓아 이전보다 한결 힘이 덜 들게 됐다. 그러나 50대 후반에 이르자 30여년이 훨씬 넘는 단순한 일상에 한 동안은 우울증세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믿고 찾는 단골손님들이 있어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다.

▲신광방앗간 신순자 대표가 가래떡을 만들고 있다.

둘째 아들이 결혼하자 며느리에게도 그동안 쌓은 떡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 2018년에는 방앗간 옆 공간에 ‘말랑떡공방’이라는 상호의 맛나고 이쁜 주문떡케이크점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며느리는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 지난 8월 원주로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명절 당일이나 집안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년 내내 문을 닫지 않았던 신씨는 지난해 8월 어깨 수술로 부득이 열흘 정도 휴업을 했다. 그러자 동해시에서 생활하던 맏딸 미화씨가 효심 가득하게도 구원투수(?)로 적극 나섰다.

현재 신씨는 딸과 함께 여전히 고춧가루를 빻고 가래떡을 뽑고 기름을 짜고 있다. 매월 4일과 9일 인근 덕포민속5일장이 서는 날이면 장구경을 겸한 단골손님들이 일감을 들고 찾아 온다. 혼잡을 피하려는 단골들은 장날을 피해 찾기 때문에 여전히 방앗간은 바쁘게 돌아 간다.

신씨는 “예전에 비해 손님들이 많이 줄었지만 40년 이상 된 단골고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어 힘이 닿는 한 계속 방앗간을 운영한 뒤 맏딸에게 가업을 물려줄 계획”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방기준 kjb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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