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보증수표에서 부도수표로?... 마블이 심상찮다

라제기 입력 2022. 11. 3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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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러브 앤 썬더' 이어 '블랙 팬서2'  흥행 시들
마블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국내 극장가에서 200만 관객을 모으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지난 9일 개봉해 28일까지 200만3,004명을 모았다. 코로나19로 최근 3년 새 극장 관객 수가 쪼그라든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개봉 전 국내 영화계가 내다본 흥행 수치는 300만~400만 명 이상이다. 전작 ‘블랙 팬서’(2018)가 540만 명을 동원했고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 높던 마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 수치였다. ‘블랙 팬서2’의 평일 관객은 1만 명대이어서 300만 고지 도달은 불가능해 보인다.

마블 영화가 흔들리고 있다. 흥행 보증수표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흥행 부진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 ‘한국은 마블 공화국’이라는 우스개가 무색할 정도다. 마블 영화가 이제 침체기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마블 맞나? 신통치 않은 흥행

'토르: 러브 앤 썬더'는 200만 명대 관객 동원에 그쳤다. 관객 평이 신통치 않기도 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 앞서 지난 7월 개봉한 ‘토르: 러브 앤 썬더’ 역시 흥행 성적표가 실망스러웠다. 관객 271만 명에 그쳤다. 전작 ‘토르: 라그나로크’(2017)가 465만 명을 모은 것과 비교된다. 여름 흥행 선봉에 나서며 극장가 재활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무너뜨렸다. 흥행 수치뿐 아니다. 관객 평까지 좋지 않다. 네이버 관객 평점이 6.71(만점 10)이다. ‘토르: 라그나로크’(9.03)보다 한참 떨어진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도 7.08로 전편(8.33)보다 낮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부상, 영화관람료 인상 등 극장 관람 여건 급변만을 마블 영화 흥행 부진 요인으로 지적할 수 없다.

연간 흥행 순위표를 봐도 마블 영화의 약세가 두드러진다. 올해 전체 흥행 순위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588만 명) 5위, ‘토르: 러브 앤 썬더’ 9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12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3위(이터널스), 4위(블랙위도우), 11위(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각각 올랐던 지난해보다 흥행 순위가 대체로 낮다(소니픽쳐스가 배급하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제외). 2019년 마블 영화는 2위(어벤져스: 엔드게임)와 9위(캡틴 마블)에 올랐다(2020년 개봉 마블 영화는 코로나19로 없음).


MCU 4기와 겹치는 흥행 부진

'이터널스'는 마동석 출연으로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으나 너무 많은 새 캐릭터가 등장해 혼란스럽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마블 영화의 흥행 부진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4기와 겹치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MCU 4기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부터 시작됐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와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이 퇴장하고 새 캐릭터를 앞세운 영화들이 잇따라 선보였다. ‘이터널스’가 대표적이다. 테나(앤젤리나 졸리), 이카리스(리처드 매든), 킨고(쿠마일 난지아니), 세르시(젬마 찬) 등 마블 캐릭터를 새롭게 대거 소개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아시아계 첫 마블 슈퍼 히어로를 내세웠다.

천정부지로 오른 배우들 몸값을 해결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도였으나 관객은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익숙지 않은 캐릭터들이 동시에 나타나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게 됐다. 한 영화 마케팅업체 대표는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속에서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755만 명을 동원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마블 영화 희소성 줄고 난해해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OTT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완다비전'과 이야기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마블 콘텐츠의 지나친 팽창도 최근 약세의 요인으로 꼽힌다. 이미 마블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데다 OTT 디즈니플러스 드라마까지 제작되면서 희소성이 줄고 대중의 피로도는 늘어나게 됐다는 지적이다. MCU가 안방극장까지 확장되면서 드라마 ‘완다비전’을 시청하지 않으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김효정(한양대 미래융합학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는 “마니아들마저 숙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물 관계도가 복잡해지고 정보가 많아졌다는 지적이 있다”며 “스펙터클이 더 이상 마블만의 장점이 아닌 시대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블 영화에 대한 비판은 해외에서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7월 12일 ‘우리는 마블 피로감에서 마블 탈진으로 가버렸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습관적인 절정(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지루한 인물 조합(이터널스), 대단히 난해한 이야기 구성(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전체 분위기의 완벽한 부조화(토르: 러브 앤 썬더) 등을 들며 ‘MCU가 침체기에 접어든 것 아닌가’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 배우 겸 작가 톰 세구라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2 베어스 1 케이브’에서 “마블 영화들은 이전 MCU 영화들의 복사본같이 종종 느껴진다”고 꼬집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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