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안 보이기에 더 많은 상상 할 수 있죠”

김성현 기자 2022. 11. 3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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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영화감독 노동주씨, 영화제작 과정 담은 다큐 개봉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노동주. 영화 제작사 미학인우주선

자신이 만든 영화를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감독이 있다. 시각장애인 영화 감독인 노동주(39)씨다. 지금까지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네 편을 연출한 그가 이번에는 장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됐다. 30일 개봉한 ‘영화감독 노동주’(감독 임찬익)의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한 것이다.

노 감독은 18세 때 희소 난치성 질환인 다발 경화증 판정을 받았다. 당시 노 감독은 치료를 위해 고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로 조선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 양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대기환경기사·수질환경기사 등 각종 자격증을 땄고 토익 940점을 받았다. 현재 광주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어릴 적부터 영어 회화에 관심이 많아서 꾸준히 공부했다. 모의 토익 시험에선 만점을 받은 적도 있다”면서 웃었다. 지금도 영화 제작을 하지 않을 때는 치료 안마사, 복지관 영어 강사, 장애인 인권 강사로 활동한다.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노동주씨. 영화 제작사 미학인우주선

시력을 잃었지만 영화감독의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노 감독은 “어릴 적에 영화광인 아버지께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테이프로 리샤오룽(李小龍)·청룽(成龍)·저우룬파(周潤發)의 홍콩 영화와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물을 보면서 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시나리오 작성과 촬영 교육을 받고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음성 전환이 지원되는 문서 작성 프로그램으로 각본을 썼고, 동료 배우·스태프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현장 촬영의 난제(難題)를 풀어갔다. 그는 “처음에는 남들이 2~3번 찍으면 완성할 수 있는 장면을 20~30번씩 반복해야 했지만,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배우는 즐거움이 컸다”고 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그가 단편영화 ‘그냥 걸었어’를 연출하는 과정을 담은 제작기의 형식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질문받을 적마다 이렇게 답한다.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고, 꿈과 상상력에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차기작으로는 청각과 시각장애를 지닌 남녀의 로맨스를 담은 장편영화 ‘보통 사랑’을 준비 중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 시각장애인 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영화감독 노동주’의 제작사인 미학인우주선(대표 송정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큐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성우의 내레이션과 자막을 입힌 버전으로 상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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