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거물의 실체를 들춘 두 기자… 세상을 바꾼 ‘미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성현 기자 2022. 11. 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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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그녀가 말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과거에 겪으신 일을 제가 바꿀 순 없지만,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건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2016년 뉴욕타임스 탐사 보도팀의 두 여기자가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70)의 성폭력 스캔들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 영화사 미라맥스의 설립자인 와인스타인은 아카데미상·토니상을 받고 영국 명예 훈장과 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던 미 영화계의 거물. 막상 두 기자의 취재가 시작되자 여성 피해자들은 보복이나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둘씩 입을 닫는다.

30일 개봉한 ‘그녀가 말했다(She Said)’는 와인스타인 사건의 실화에 바탕한 영화다. 뉴욕타임스의 당시 보도 이후, 앤젤리나 졸리·귀네스 팰트로·애슐리 주드 같은 스타 여배우들이 폭로에 동참했고 결국 와인스타인은 강간과 성범죄 혐의로 23년형을 선고받았다.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들의 취재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는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뤘던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여성 버전을 연상시킨다.

민감하고 폭발성이 강한 주제를 다루지만, 거꾸로 접근 방법은 차분하고 사려 깊다는 점이야말로 영화의 미덕. 우선 피해자인 여성들의 신체적 노출이나 강압적 행위에 대한 묘사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또한 성폭력 고발을 뜻하는 ‘미투(Me Too)’ 운동을 촉발시킨 장본인인 와인스타인을 등장시키지 않는 역발상도 돋보인다. 대신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사실을 실제로 폭로했던 여배우 주드가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출연해서 의미를 더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 유니버설 픽쳐스

뉴욕타임스 여기자 역을 맡은 배우 캐리 멀리건(37)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자칫 반감될 뻔했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에서 남성 가해자들을 향한 광기 어린 복수심을 연기했던 멀리건은 반대로 이번 영화에서는 속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스캔들에도 끝까지 매달리는 끈질긴 직업 정신을 보여준다. 같은 배우가 같은 주제의 영화에서도 얼마든지 차별화된 연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된다. 이미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멀리건은 이 영화로 또 다시 내년 오스카의 유력한 후보가 될 것 같다.

이 영화를 권하고 싶은 대상은 적지 않다. 특히 기초적 사실 확인마저 등한시한 채 오로지 자극적인 폭로와 싸구려 음모론에만 매달리는 정치권과 일부 온라인 매체의 협잡에 따끔한 일침이 된다. 영화에서 기자들은 단 한 번의 인터뷰 성사를 위해서 숱한 거절과 실패를 기꺼이 감수하고, 문장 하나를 끊임 없이 고쳐 쓰며, 숫자 확인 하나에도 얼싸안고 기뻐한다.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도 취재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건 딱 하나의 동사다. 바로 ‘발행하다(Publis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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