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사이] 사진과 총, 캄보디아에서의 대통령 부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고전으로 간주되는 <현대국제정치론>(1987·법문사판)의 저자 한스 모겐소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폴레옹의 모자 에피소드를 예로 든다.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나폴레옹은 1813년, 오스트리아의 외상 메테르니히와 9시간 동안 만났다. 전쟁의 양상이 프랑스 대(對) 러시아·프로이센·영국·스웨덴 동맹군으로 변화하자,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에 반(反)프랑스 동맹에 참가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을 무시했고, 여전히 유럽의 지배자처럼 행동했던 나폴레옹은 상대방을 떠본다. 그는 일부러 모자를 떨어뜨려 메테르니히가 집어주길 바랐지만, 메테르니히는 못 본 척했다 .
모겐소는 의전이 곧 국력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며 ‘흥분했지만’, 200여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두 인물 모두 유치해 보인다. 당대 상황은 ‘모자를 떨어뜨리고, 안 주워주고’ 이런 수준이 아니다. 푸틴은 아베 전 일본 총리와의 회의 일정에 3시간씩 늦었다. 2007년에는 개를 무서워하는 것으로 알려진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할 때 송아지만 한 개를 앞세웠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나눈 후 급히 자신의 손을 바지에 닦았다. 코로나19라는 맥락이 있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인 간 행동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굉장한 무례인데, 전 세계로 중계되는 국가 정상 간 만남에서 이런 일이? 동영상을 보면 가해자인 해리스도 놀란 듯했다.
푸틴의 행동이 의도적이라면, 해리스의 경우는 근대적 위생 관념이 작동한 것일까. ‘유색 인종 문재인’에 대한? 그러나 그녀야말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흑인·여성’ 부통령 아닌가. 의식적 망동이든, 무의식적 실례든 푸틴과 해리스의 공통점은 상대방에 대한 무시이다. 차이는 개인의 배경이다. 푸틴은 백인 남자고, 해리스는 둘 다 아니다. 문 대통령은 잘 모르겠고, 아베나 메르켈은 매우 불쾌해했다. 메르켈은 그 자리에서 항의했다. 독일이고 메르켈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외교에서 모든 나라를 똑같이 대우할 수는 없다. 과잉, 과소 의전 모두 외교력 낭비다. 하지만 거창한 의전은 아니더라도 국가를 대표해서 타국을 방문한 약소국 외교관 개인에 대한 존중은 그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존중해서 나쁠 일은 없다.
조상의 지혜를 본받자. 조선이 천명한 공식 외교 사상인 사대교린(事大交隣)은, 글자 그대로만 보면 합리적 전략이었다. 사대는 논쟁이 많으니 차치하고, 교린은 이웃을 무시하지 말고 잘 지내라는 뜻이니 나쁘지 않다. 이웃과 잘 지내면 되지, 굳이 “왜(倭)니, 오랑캐니” 하며 얕잡아 볼 필요가 있을까. ‘상대 무시 = 나 훌륭’이라는 방식, 즉 열등감에 기초한 방어기제의 갑옷을 입은 인생들은 어디에나 있다.
재현의 윤리
하긴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랴. 아예 맥락에 벗어난 기이한 일도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캄보디아 방문이 그것이다. 나랏일에 주제넘은 걱정이지만, 그것은 내가 한국인일 때이다. ‘캄보디아(의 이미지)’에 동일시하는 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제 캄보디아 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분노한다. 동시에 이는 평범한 시민의 고달픈 일상이기도 하다. 타인이나 집단이 나를 마음대로 재현(묘사, 평가, 규정)할 때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야 할까.
김건희 여사는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가가 아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국제적인 공식 회의가 있어서 방문했는데, 빈곤 지역의 심장병을 앓는 아동을 찾아가고 (조명 설치 여부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고 배포하는 행위는 적절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폭력이다.
전쟁만이 폭력은 아니다. 문화연구, 탈식민주의, 여성주의, 인류학 등 현대 인문학은 재현의 윤리에 대해 수없이 고민해왔다. 이들 학문의 목적 자체가 이 윤리와 정치경제학에 대한 탐구이다.
젠더 폭력 피해를 연구할 때 피해 여성을 피해자화하지 않고 어떻게 피해 구조를 드러낼 것인가. 음핵 절개가 널리 행해지는 지역에서 서구 페미니스트는 그 현장을 찍을 것인가, 당장 피해자를 구조할 것인가. 다른 차원의 논쟁도 있다. 서구 여성도 야만적인 성차별을 당하는데, 그들은 왜 자국 문제보다 ‘제3세계’ 여성을 그토록 걱정하는가.
수단의 기아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를 촬영하여, 1994년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수상한 후 2개월 만인 33세에 자살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소녀를 먼저 구하지 않았다는 대중의 비난은 격렬했고 그 역시 자책감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독수리가 다가오기를 20분간 기다린 후 사진을 찍고, 소녀를 긴급 식량센터에 옮겨주고 내내 울었지만 죄의식을 감당하지 못했다.
캄보디아에서 대통령 부인의 성녀(聖女) 코스프레는 이번 정권의 성격을 압축한다. 더 놀랄 일이 무엇이겠냐마는, 그래도 놀랐다. 나는 윤 대통령 부부가 ‘나쁜 사람’이거나 ‘극우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상한 경우라고 본다.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이런 커플은 없었다. 만일 질 바이든 여사가 한국을 방문, 보육원 아동을 만나고 사진을 찍어 널리 알린다면? 푸틴과의 사이에 자녀 4명을 둔 31세 연하 연인(실질적 배우자)인 알리나 카바예바가 빈곤국을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댄다면? 이는 의전이고 국격이고 운운할 것도 없는, 정신 나간 권력자의 기이한 행동이다.
김 여사의 시선은 ‘저 높은 곳을 향해’ 응시하고 있고, 그가 안은 어린이는 카메라를 보고 있다. 상식대로라면 두 사람이 마주 보아야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은 한국 사회의 총체적 수준을 보여준다.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느냐”는 국회의원(국민의힘 윤상현), 김 여사 비판은 무조건 미소지니(여성혐오)이니 자제해야 한다는 사람들, “김혜자, 정우성 배우도 마찬가지 아닌가”식의 빈곤 포르노에 대한 옹호….
돋보이고 싶음의 폭력
윤 의원의 발언은 논외고, 배우와 액티비스트의 활동은 대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김건희’는 ‘엘리너 루스벨트’가 아니다. 미소지니는 여성 개인을 혐오하는 행위가 아니다.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당연히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착하지 않다. 미소지니는 한 인간을 동일한 성격을 지닌 집단성으로 조작하는 행위를 뜻한다. 여자는 모두, 그저 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여성을 어머니와 창녀로 이분화하고 그 스펙트럼 안에서 평가하는 방식이다.
내가 미소지니를 번역하지 않고 사용하는 이유는 혐오라는 단어가 주는 피로감, 남성 혐오라는 황당한 대칭어의 생산, 그리고 이 문제가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약자 전반에 대한 지배 전략이기 때문이다.
미소지니는 상대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맘대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고인 가부장제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상상(망상)인 오리엔탈리즘, 이 두 가지가 문명의 두 축이다.
대상과 대상화는 다르다. 누구나 대상일 수 있다. 대상화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한다. 이성애의 정상성은 동성애에 대한 낙인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결혼제도의 정상성은 이혼과 저출산이 문제라는 사고방식이 없다면 작동할 수 없다. 흰 피부의 우월성은 흑인의 존재를 전제한다. 이것이 사고방식으로서 ‘미소지니’다.
주지하다시피 카메라와 권총은 동반 발전했다.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가 모두 ‘shoot’로 같은 이유다. 김 여사의 성모 마리아, 오드리 헵번 흉내내기는 ‘캄보디아’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제국주의는 물자와 노동력을 착취하는 시스템만이 아니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믿게 만드는 장치까지 포함한다.
제국주의는 불쌍한 어린이를 이용, 관용을 선전한다. 제국주의 용어가 불편하다면, 순한 말로 바꿀 수 있다. 주인공병, ‘관종’, 돋보이고 싶은 욕망. “돋보이고 싶다”도 그 행동에 비한다면 너무 좋은 표현이다. 타인의 생명과 고통을 볼모로 셀럽이 되고 돈을 버는 이유가 겨우 돋보임 욕망 때문일까.
김 여사는 대선 중 허위 경력과 범죄 연루 의혹 문제로 6분13초짜리 기자회견을 했다. “돋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에게 폐가 되었다”는 요지였다. 누구나 돋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생계만 해결된다면,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 돋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국력을 사용(私用)하지 말고, 거울 앞에서 혼자 하기를 권한다. 어차피 관중도 그의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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