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99] 수출의 날

차현진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2022. 11. 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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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발표된 미 군정청의 대외 무역 규칙은 무역을 면허제로 선언했다. 1948년 제정된 헌법(제87조)은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하에 둔다”고 했다. 기술은 없고 물자는 부족하니 수입을 막아야 적자가 줄어든다는, 패배감의 산물이다. 실제로 1950년대가 끝날 때까지 무역수지는 만성 적자였고 수출품의 90%는 농수산물과 지하자원이 차지했다.

수입은 더 한심했다. 우리 정부가 GARIOA, ECA, SEC, CRIK, UNKRA, AID, ICA, PL480 등 온갖 국제기구와 미국 정부부처에서 ‘심청이가 동냥젖 얻어먹듯’ 받아온 원조품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1961년 집권한 군사정부가 모험을 걸었다. 헌법(제116조)을 고쳐 자유무역을 선언하고 ‘보세 무역’으로 옹색한 현실을 타개하려고 했다. 관세 보류(보세)된 원자재와 중간재에 값싼 노동력을 보태서 완성품을 만든 뒤 수출하는 전략이다.

문제는 관료 집단이었다. 일제 강점 말기에 자급자족론을 배운 관료들은 민원 서류에 도장을 찍는 일에 인색함을 떨면서 수입을 건별로 승인하는 것이 관료가 할 일의 전부라고 믿었다. 보다 못한 김정렴 상공부차관이 배수진을 쳤다. 수출을 위한 수입허가권을 1964년 한국은행에 넘겼다. 정부는 수출만 생각한다는 선언이었다. 특권을 빼앗긴 상공부 직원들은 난리를 치고, 업무량이 늘어난 한국은행 직원들은 아우성을 쳤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수입 심사가 간단해지면서 보세 무역과 수출이 급격히 늘었다. 그해가 끝나기도 전에 수출액이 1억달러를 넘어설 희망이 보였다. 신이 난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하는 날을 “수출의 날”로 지정했다. 1964년 오늘이다.

이제 한국의 수출은 연간 6000억달러를 훌쩍 넘어 세계 8~9위에 이른다. ‘수출의 날’은 ‘무역의 날’로 대체되었다. 58년 전의 ‘수출의 날’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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