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술자리' 파동의 희생자들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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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화려한 연말 조명이 켜지고 월드컵 응원에 잠시나마 들뜨지만 다음 해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시민들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조차 의심해야 하는 상태에 좌절하고 있는데, 세계경제는 요동을 치고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콜롬비아대 우 교수(Tim Wu)는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이것을 거래하는 활동의 해악성에 주목했다.
전통적으로는 소수 언론매체들이 정보를 걸러주고 정리해 주는 필터 역할을 하였지만 이제 필터 역할은 오롯이 개인에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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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사소화의 최대 피해자는 시민
허위보다 허구·사실의 조합이 더 위험
협력 인프라 깨는 사회적 폐해 경계해야
거리에 화려한 연말 조명이 켜지고 월드컵 응원에 잠시나마 들뜨지만 다음 해에 대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시민들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조차 의심해야 하는 상태에 좌절하고 있는데, 세계경제는 요동을 치고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이 와중에도 공론장을 달구었던 이슈들은 이런 것들만이 아니었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폭로된 제보를 바탕으로 공개적으로 장관에게 대통령과 함께 어떤 술자리에 갔느냐 추궁을 하였고 누가 참석했느니, 어떤 노래가 불렸느니, 끝도 없는 디테일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파만파 무성했다. 일단은 제보자가 꾸며낸 한바탕의 소란인 것으로 일단락되고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쏟아 부은 이후이다.
이 과정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집권여당을 감시하고자 진력을 다하였지만 본인도 제보자의 거짓말에 희생되어 신뢰에 큰 흠결을 남기게 된 의원일까? 아니면 카메라 앞에서 느닷없는 공개 질의를 받아 애꿎은 눈초리를 받게 된 장관일까? 보는 시각에 따라 이 사건은 비판과 의도적 흠집내기 사이 어딘가로 해석되고 있지만, 이 과정의 최대 피해자는 일반 시민이다.
한국언론재단 조사에 따르면 2011년 1,338개이던 인터넷신문은 10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 2020년 기준 3,594개이다. 인터넷 신문은 취재 및 편집 인력 3명 이상을 고용하고, 몇 가지 요건을 갖추어 도메인을 등록하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인플루언서, BJ, 유튜버 등 다종다양한 정보원들이 시시각각 여러 가지 이슈에 관해 의견을 낸다. 대중의 관심과 주목이 쏠리는 이슈의 경우 새로운 정보가 없어도 검색과 확산의 속도에 따라 뉴스는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콜롬비아대 우 교수(Tim Wu)는 인터넷상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이것을 거래하는 활동의 해악성에 주목했다. 또 플랫폼 사업자를 포함한 관련 사업자들을 '관심팔이 상인' (attention merchants)이라 부른다. 현재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쏟아지는 사소한 이슈들의 파도에 떠밀리면서 가장 소중하고 희소한 자원인 시간의 낭비를 끊임없이 강요당하고 있다. 관심팔이 상인들의 먹잇감인 것이다.
아예 100% 조작된 허위는 걸러내기 쉽지만 개연성이 있는 허구와 사실을 교묘하게 조합하였을 때는 오히려 걸러내기 힘들어 결과적으로 완전 허위보다 그 사회적 폐해는 더 크고 누적된다. 전통적으로는 소수 언론매체들이 정보를 걸러주고 정리해 주는 필터 역할을 하였지만 이제 필터 역할은 오롯이 개인에게 남는다. 더욱이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은 개인에게 도움이 되지만은 않는다. 어떤 뉴스를 한 번 클릭하면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사한 정보를 자꾸 우리 스크린에 대령하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보도록 이끌기 십상이다. 사소한 정보들이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면서 이슈의 중요성에 관한 감각도 무뎌진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정치권의 사소한 공방이 잘잘못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협력적 인프라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뉴스를 통해 공적인 사안을 생각하는 것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뉴스가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정체성에 따라 뉴스를 소비한다. 정체성의 위축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돌아보면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일 따위가 생기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공론장의 사소화가 정체성 기반의 뉴스 소비와 결합하면 협치에 이르는 길은 요원해진다. 일상에서 습관화된 적대감은 치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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