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난입한 인권운동가 "대의 위해 규칙 어긴 건 무죄"

현지 시간으로 어제(28일) 카타르 루사일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경기가 관중의 난입으로 잠시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의 방송사 CNN에 따르면 이날 경기에서 후반전이 시작된 뒤 몇 분 지나지 않은 시각 갑자기 남성 한 명이 무지개 문양의 깃발을 들고 경기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성소수자와 연대하고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은 무지개 문양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논란의 중심이 된 상징물입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각국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무지개색 완장 착용을 금지해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경기가 열린 카타르는 남성 간 동성연애를 하다 적발되면 최고 3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등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날 경기장에 난입한 관중은 전 축구 선수이자, 현재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이탈리아 국적의 마리오 페리(35)였습니다.

페리가 경기장에 난입할 때 입은 셔츠 앞면과 뒷면에는 각각 '우크라이나를 구하라', '이란 여성에게 경의를'이라는 정치적 함의가 담긴 글귀가 각각 적혀 있었습니다.

이란에서는 22세 여대생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2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란은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서 러시아에 드론 등을 지원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경기장으로 뛰어든 이 남성은 경기장 안전요원들에게 잠시 쫓기다 곧바로 붙잡혀 끌려 나갔습니다.

이후 이날 경기의 주심을 맡은 이란인 알리레자 파가니 씨가 이 남성이 경기장 밖에 떨어뜨린 무지개 깃발을 주워 드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소동이 벌어진 뒤 페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는 구금되지 않았다. 현재 자유로운 상태"라고 전하며 "축구장에서 내 마지막 질주를 했다"고 썼습니다.

이어 자신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글로 전했습니다.

페리는 "여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또 다른 고통을 받는 친구들이 있는 이란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무지개 완장을 금지한 FIFA가 나를 막을 수는 없다는 걸, 로빈후드처럼 표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구해야 한다. 나는 키이우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봤다"며 "대의를 위해 규칙을 어기는 건, 결코 범죄가 아니다"라고 썼습니다.

영국 매체 데일리미러는 "페리는 축구 선수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인도 2부 리그에서 뛴 게 마지막 기록"이라며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그는 최근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도왔다"고 소개했습니다.

유덕기 기자dkyu@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