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군 배속 한국인 참전용사, 방한한 대공세자 만나
한국을 방문한 룩셈부르크 대공세자가 6·25전쟁 당시 룩셈부르크군에 배속돼 싸웠던 90대 한국인 참전용사와 만났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기욤 장 조제프 마리 룩셈부르크 대공세자 일행은 29일 오후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6·25전쟁 룩셈부르크 참전비에 참배했다. 이날 행사에 전쟁 당시 룩셈부르크 소대에 배속됐던 참전유공자 김성수옹(96)도 참석해 기욤 대공세자와 만남이 이뤄졌다. 벨기에 대대 A중대 룩셈부르크 소대에 속해 1951~1953년 전장에서 싸운 김옹은 당시 룩셈부르크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기욤 대공세자는 김옹에게 감사의 메시지와 함께 왕실을 상징하는 선물을 전달했다.
6·25전쟁은 룩셈부르크가 자국 군인을 해외 전쟁에 파병한 유일한 군사개입 사례다. 룩셈부르크는 파병 당시 인구 20여만명에 불과했으나 전투병력 100명을 참전시켜 22개 참전국 중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병력을 보냈다.
룩셈부르크는 1950년 10월1일 지원병 48명으로 1개 소대를 편성해 벨기에군 대대 A중대에 편입시켜 참전했다. 이같이 편성된 벨기에-룩셈부르크군 대대(Bel-Lux 대대)는 한국 지형과 유사한 곳에서 훈련을 마치고 12월18일 벨기에 안베르를 출발해 1951년 1월31일 부산에 상륙했다. 룩셈부르크 소대는 1951년 1월31일부터 8월25일까지 활동한 제1차 분견대와 1952년 3월28일부터 1953년 1월7일까지의 제2차 분견대로 구분돼 연인원 100명을 파병했다.
학당리전투와 잣골전투(현재 철원)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2명이 전사하고 13명이 부상당하는 희생이 있었다. 현재 6명의 룩셈부르크 참전용사가 생존해 있다.
한국 정부는 1975년부터 6·25전쟁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현재까지 참전 22개국의 3만3751명이 초청됐다. 이 중 룩셈부르크에서는 참전용사 및 유족 150명이 방한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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