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수·면적을 넘어 저소득층에게 ‘주거 사다리’ 세워줄 임대 정책 필요[안명숙의 차이나는 부동산 클래스]

기자 입력 2022. 11. 2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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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

꼼꼼한 성격의 후배 P는 신혼집을 마련하는데 영끌을 선택하기보다 현실적 대안을 찾았다.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신혼부부 행복주택. 아파트는 아니지만 신축 다세대주택으로 주변 시세보다 30% 이상 저렴해 일석이조였다. 차근차근 목돈을 모으면서 주택청약을 준비하면 3기 신도시 등 향후 5년 이내에는 내 집 마련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P의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나의 신혼 시절이 생각났다. 신도시 분양이 마무리되던 1990년대 중반 집값이 안정되면서 경쟁이 치열했던 신도시도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돈도 부족하고 청약점수도 낮은 신혼부부에게는 아파트 분양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띈 신도시 임대아파트 공급 정보. 순위 내에서 청약이 마감되지 않아 무주택 가구주에게 청약의 기회가 많아졌다. 40㎡ 이하 50년 공공임대로 초기 임대료는 7만7000원. 30여년 전이라 소득도 지금보다 훨씬 낮았지만 그래도 부담할 만한 수준이었다. 전세금으로 묶여 있던 보증금으로 차를 사니 주택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고 목돈을 모아 2년반 만에 내 집 마련을 실현해 나의 첫 아파트였던 임대아파트와 이별하게 되었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임대아파트는 목돈 없이 출발했던 우리 가족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주거 사다리’가 되어준 셈이다. 불행하게도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소득에 비해 너무 비싼 아파트 가격이 임대아파트 입주자들의 내 집 마련의 의지를 아예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30년 전에 비해 계층 간 소득 격차도 더 커지고 주택의 수요도 무척 다양해지고 있다.

건축가 임우진의 저서 <보이지 않는 도시>는 임대주택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칠레의 반쪽집(A half of a Good House)을 소개하고 있다.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영구임대라는 단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혜택과 보살핌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되겠지만, 입주자에겐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자신이 할 일은 영구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아라베나는 영구주택 건설의 정책 목표를 좀 더 고급스러운 건물을 만들거나 CCTV 같은 보안장치 설치로 안정성을 제고하는 등의 물리적 방법이 아닌 사람들의 욕망과 삶의 의지를 이용한 접근법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보통 4인 이상의 가족이 스트레스 없이 생활하려면 기본적으로 약 80㎡의 면적이 필요하지만 예산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여 우선 40㎡의 공간과 차후에 증축할 수 있는 또 다른 40㎡의 빈 공간을 함께 분양하도록 했다. 비어 있는 절반은 자신이 노력하면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목표가 생긴 입주자들은 다른 사회주택 입주자와 다르게 변해 갔다. 주말에도 열심히 일하면서 집의 반쪽을 자신의 힘으로 완성해갔다. 긍정적으로 바뀐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멋지게 가꾸기 위해 더 열정적으로 일했고 몇 년 후 기초수급생활비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빈곤에서 벗어났다. 2016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아라베나의 반쪽집은 남아공, 태국, 멕시코의 사회주택에 적용되고 있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반쪽집의 사례가 국내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이 공급하는 주택의 숫자나 면적, 실내장식 등 물리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궁극적인 주거 사다리로서의 금융 등 저소득층의 자립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과 연계되어야 궁극적인 주거복지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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