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표시, 유통기한서 ‘소비기한’으로 변경 본격화
판매 허용 기간 대신 보관법 준수 때 섭취 가능한 최종 기한 표시
유통기한 경과로 폐기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사회적 비용 감소
업계선 기대·우려 교차…비용 줄지만 소비자 분쟁 증가할 수도
서울 마포구에 사는 회사원 A씨(30)는 최근 고민 끝에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버렸다. 마트에서 ‘2+1행사’를 통해 싸게 사서 쟁여 놨으나, 출장으로 집을 비우면서 유통기한을 넘겨 버렸다. A씨는 “냉장보관을 하지 않아 괜히 먹었다가 탈이라도 나면 병원비가 더 들 것 같아 버렸다”며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 처리는 항상 고민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내년 1월부터 식료품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뀐다.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유통기한)이 아닌, 소비자가 보관조건을 준수할 경우 식품을 먹을 수 있는 최종 기간(소비기한)을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2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개정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이 내년 1월1일 시행돼 1년간 계도기간을 거쳐 2024년부터 식품 포장지에 소비기한이 표기된다. 다만 우유류는 품질 유지를 위해 냉장 보관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031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 경과로 폐기되는 음식물 쓰레기와 이를 처리하기 위해 발생하는 손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하는 제도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따르면 한국의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비용은 1조96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소비자와 산업체에 연간 각각 8860억원, 260억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소비기한은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정도 앞선 유통기한과 달리 80~90% 앞선 수준에서 설정된다. 소비할 수 있는 기간이 더 길어지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실험에 따르면 적정 보관 온도(0~5도)를 유지할 경우 유통기한이 3일인 식빵은 20일까지, 두부는 14일에서 90일까지 보관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소비기한을 사용하는 국제 추세도 반영했다. 또 1985년 유통기한을 도입할 때보다 제조·포장 등의 유통 환경이 개선돼 소비기한을 적용해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식품업계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재고관리가 수월해 폐기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소비자와의 분쟁이 늘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지점이다.
식약처는 식품 제조·가공업자가 제품의 특성과 유통과정을 고려해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소비기한을 직접 설정토록 했다. 업체로서는 유통기한 후 정확히 얼마나 지난 기간까지 먹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각종 실험을 진행 중이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섣불리 기한을 표기했다가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막기 위해 소비기한을 보수적으로 잡아 실질적으로는 유통기한보다 많이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장기간 음식을 보관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만큼 정부의 정확한 정보 전달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4년간 200개 유형에 대한 권장소비기한을 설정해 공개할 방침이다. 올해는 다음달 50개 유형에 대한 권장소비기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50개 유형 중 다소비 품목인 김치와 이유식 등 80개 품목에 대해 다음달 1일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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