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밖 미국도 똑같다” 탈푸틴 망명자들 ‘울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해 러시아를 버리고 미국을 선택한 러시아인들이 망명 신청 과정에서 미국 이민관세단속국(ICE) 수용소에 구금돼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 2월24일 전쟁 개시 후 푸틴 대통령이 반체제 활동가나 징병 기피자들을 처벌하면서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는 러시아인들이 급증했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만1763명의 러시아인이 남쪽 국경을 통해 미국에 들어왔다. 이는 전쟁 전인 2020년(467명)과 비교해 46배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미국의 실상은 조국을 떠나온 러시아인들이 꿈꾼 것과 크게 달랐다. 뉴욕타임스(NYT)는 28일(현지시간) 이들 중 다수가 자유를 얻는 대신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이민자 수용소에 구금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의사로 일하던 마리아 셰미아티나(29)와 보리스 셰브추크(28) 부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자신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부부는 의대 재학 시절부터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후원하는 등 푸틴 정권 비판 활동을 해왔다.
정부 검열로 게시물이 삭제되고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부부는 미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에 남을 경우 군의관으로 전쟁에 끌려갈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의 미국행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4월 말 멕시코의 접경 도시 티후아나에 도착한 뒤 미국 쪽 국경검문소에 망명을 요청했으나 5월 초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두 곳의 수용소에 각각 구금됐다.
망명 승인을 얻으려면 모국에서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 사회단체 회원 등의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민자 수용소에 구금될 경우 변호사의 조력을 받거나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기 때문에 망명 승인을 받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셰미아티나 부부는 구금 과정에서 러시아에서 반전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담긴 노트북과 휴대폰을 압수당했다.
ICE는 정확한 통계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이민자들을 지원하는 변호사들에 따르면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 출신 망명 신청자들은 다른 나라 출신들보다 구금되는 비율이 높다. 셰미아티나 부부는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각기 1만달러(약 1300만원)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지난 6일 헤어진 지 6개월 만에 재회했다. ICE가 보석금으로 3만달러(약 3900만원) 이상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구금됐던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다고 증언했다. 셰브추크는 수용소에서 수갑을 차고 이동하던 중 교도관이 자신을 밀어넘어뜨려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면서 “내가 러시아를 버리고 러시아와 똑같은 곳에 도착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반체제 활동으로 여러 차례 수감됐던 남편과 함께 러시아를 떠난 올가 니키티나(33)는 “수용소에 있는 동안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7개월 동안 구금됐던 또 다른 활동가 이반 소콜로브스키(25)는 최근 망명 신청 재판에서 패소해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 그는 “감옥에 장기 수감되는 것보다는 국경에서 사살되는 게 낫다”고 말했다.
ICE는 NYT에 “수감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운영 전반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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