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사 사장 “안전운임제 전엔 화물차 철판 뜯어먹고 살았다”
운송사들, 화주와 ‘덤핑’ 계약
피해는 고스란히 기사들에게
운임제, 갑을 간 균형추 역할
안전사고 개선도 피부로 느껴
“기사들이 화물차 철판을 뜯어먹고 살았다.”
부산의 물류회사 사장 A씨(70대)는 ‘안전운임제’ 도입 전 컨테이너 화물기사들의 삶을 이렇게 기억했다. 운송사업자인 그는 15년간 물류회사를 운영하며 화물기사들과 직접 운송계약을 맺고 운임을 지급해 왔다. 화물업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A씨는 지난 28일 기자와 인터뷰하며 “(안전운임제 전에는) 화물기사들이 수입은 턱없이 부족한데 화물차는 매일 낡으면서 감가상각됐다. 운송사 사장들이 기사들을 보고 ‘차량 철판을 뜯어먹고 산다’고 할 정도였다”며 “물류업계 전체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안전운임제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물류 현장은 갑과 을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있어요. 그나마 안전운임제가 그 균형을 조금이라도 잡아줬는데…. 안전운임제가 사라지면 정말 다 죽습니다.” 30년차 물류회사 사장 B씨(70대)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10년 동안 (최저가로) 깎이고 눌려 온 운임을 정상화한 게 안전운임제”라고 했다.
물류 현장에서 기사들과 계약을 맺고 운임을 주는 운송사 사장들조차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2021년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받아 한국교통연구원이 수행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 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를 보면, 시멘트 운송사 80%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또는 일몰제 추가 연장’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테이너 운송사도 55%가 동의했다. 경향신문은 부산항을 중심으로 물류업에 종사하고 있는 운송사업자 2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화주들과의 계약에서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을 피하고자 운송사업자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
인터뷰에 응한 운송사업자들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당장은 피해를 입고 있지만, 안전운임제가 있어야 물류 현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입을 모았다. 적정 운임 보장이 물류업계 전체가 상생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화물시장은 ‘화주-운송사-화물기사’의 수직구조로 이뤄진다. 항만을 예로 들면, ‘화물의 주인’인 화주는 화물을 내리는 항만 인근의 운송사와 운송계약을 맺고 ‘운송운임’을 지급한다. 운송사는 이렇게 받은 화물을 내륙의 다른 지역으로 운송하기 위해 화물차를 소유한 화물기사와 계약을 맺고 ‘위탁운임’을 낸다. 이 과정에서 화물 고유의 ‘데이터’를 관리하며 점과 점을 매개해주는 게 운송사의 역할이다.
화주-운송사 계약은 입찰로 이뤄진다. 운송사들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낮은 단가를 적어 낼 수밖에 없다. 그만큼 화물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몫도 줄어든다. B씨는 “이 바닥이 10년 동안 해마다 운임이 깎였다. 내가 10년 전에 하역비를 t당 약 12만원 받았는데, 최저 6만원까지 내려갔었다. 운송사들이 못 받으니까 적게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운송사들은 어떻게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덤핑(원가 이하 판매)을 하고, 운임이 떨어지면서 화물기사들도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이 같은 ‘치킨게임’의 해답으로 2020년 1월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다. 컨테이너와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에 한해 3년 시한 일몰제로 적용됐지만, 물류업계의 숨통을 터주는 조치였다고 운송사업자들은 말했다.
운송사업자들은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변화를 확실히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소득이 올라갔으니 기사들도 여유가 생겼다. 이전에는 과속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완화되고 있다”며 “안전사고 개선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B씨는 “부산의 경우 새로 생긴 신항으로 외국계 자본이 들어왔는데 정부가 규제를 안 하며 균형이 무너졌다. 안전운임제가 그나마 균형을 잡아줬다”며 “안전운임제가 없었다면 허브(HUB)항이고 뭐고 완전히 끝났을 것”이라고 했다.
운송사업자들은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에도 현장이 완전히 ‘정상화’되지는 못했다고 본다. 지난 10여년 동안 운임이 지나치게 많이 깎여서 아직도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가 복구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운임제 ‘축소’는 물류업계 전체가 무너지는 길이라고 운송사업자들은 말했다. A씨는 “10여년 동안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된 운임을 다시 원가 반영하는 요율로 돌리는 게 안전운임제의 취지”라며 “화주들도 파트너십을 갖고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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