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첫 발동 초강수…尹 정부 노동개혁 신호탄되나(종합)
"노사 법치주의 확고하게 세울 것"…불법 용납 않겠다 원칙 재확인
화물연대, 가처분·소송 검토…대통령실도 손배소 대응 방침
[이데일리 김아름 박종화 성주원 기자] 정부가 18년 만에 운송업계에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한 ‘노사 법치주의’에 따른 노동개혁의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윤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시멘트, 철강 등 물류 중단으로 전국 건설과 생산 현장이 멈추면서 우리 산업 기반이 초토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업무개시명령 발동과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대선 후보 시절부터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산업현장의 약자에 대해 근로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게 ‘윤 대통령식’ 노동개혁의 큰 골자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노동 부분의 개혁에 속도를 내리라 전망했다.
다만 화물연대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가처분 신청과 취소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해 윤 정부의 노동개혁 첫 시험 무대 결과에도 관심도 커지고 있다.
국토부·지자체·경찰, 76개팀 꾸려 즉시 조사
이날 국무회의에서 업무개시명령이 심의·의결됨에 따라 정부는 국토교통부와 지자체 공무원, 경찰 등으로 76개 조사팀을 꾸려 200여개 시멘트 운송업체에 대한 일제 현장조사에 나섰다. 운송업체와 거래하는 화물차주의 명단, 주소를 파악하고 운송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수상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조사팀에서 운송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그 시점이 지난 이후 재차 확인했을 때도 거부하고 있다면 운송거부자로 간주할 것이다”며 “미복귀자에 대해서 국토부가 행정 처분 대상이라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전달하면 이후 지자체에서 소명 절차를 거쳐 처분을 내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운송업체 차원에서 운송을 거부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업체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서를 전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일감과 화물차 번호판을 함께 관리하는 ‘지입’ 시멘트 운수사에는 당장 이날 오후 명령서가 전달됐다. 번호판만 관리하고 일감은 다른 회사에서 받는 ‘용차’의 경우 화물차주의 주소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이상 운수종사자는 명령을 전달받은 다음 날 자정까지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30일간의 면허정지(1차 처분) 또는 면허취소(2차 처분) 될 수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매길 수도 있다. 국토부와 경찰 등은 복귀 거부자에 대한 제재도 서두를 계획이다.
김 실장은 “업무개시명령을 신속히 집행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며 “물류 정상화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조속히 복귀하라는 명령에도 불응하면 영업 정지 행정처분과 형사처벌도 수반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물연대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16개 지역에서 동시에 결의대회를 열고 삭발 투쟁에 나섰다. 화물연대는 “정부는 형식적인 교섭에만 임하고 업무개시명령이라는 탄압에 나섰다”며 “더 큰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업무개시명령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105호의 강제 근로 폐지 협약에 위반된다”고 했다.
화물연대는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과 함께 ILO 사무총장, 국제연합(UN) 특별보고관에 긴급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아울러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명령 무효 가처분 신청과 취소 소송 제기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번 파업으로 정부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면 화물연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어 양측간 강 대 강 대치가 소송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만약 화물연대가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이를 법원이 판단할 동안 적어도 1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산업계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이번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을 법원이 수긍해야 하는데 법원이 이번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이례적으로 긴급하게 결정할 수 있다. 판사 출신인 윤정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화물연대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거부했는지, 그 때문에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해결점 모색해야
이번 업무개시명령을 기점으로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법률상 허점 탓에 노조가 생산 주요 업무시설을 직접 점거하지 않더라도 사업장 출입구나 로비 등 사업장 내의 통행공간을 점거해 기업의 생산활동 자체를 사실상 전면 중단시키고 있다”며 “이는 법적 처벌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노조의 사업장 점거로 기업의 정상적인 생산활동이 침해되고 소모적인 분쟁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정이 극과 극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쉽사리 해결점을 모색하기 어려운 만큼 국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하헌구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결국 입법 사항인 만큼 정부와 화물연대가 논쟁할 게 아니라 국회 안에서 여야가 논의하는 게 낫다”며 “아직 안전운임 효과가 불분명한 면이 있다. 일몰을 연장해 현행 틀을 유지하면서 효과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문승관 (ms7306@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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