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기관장 자리는 전리품?

이정하 2022. 11. 2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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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경기도의회와 서울시의회 등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산하 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조례 제정을 두고 찬반이 팽팽하다. 사진은 경기도의회 전경.

[전국 프리즘] 이정하 | 전국부 기자

지방선거 뒤 어김없이 홍역을 치르는 곳이 있다. 광역·기초자치단체 등이 출자·출연한 산하 공공기관이 그렇다. 선거 뒤엔 이들 산하 출연·출자기관장 거취를 두고 전임 단체장의 ‘알박기’ 또는 신임 단체장의 ‘찍어내기’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 6·1 지방선거를 치른 뒤에도 여지없이 그런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다. “선거 있는 해에는 거의 업무 마비예요.” 경기도 한 기초단체 산하기관 직원의 말이다. 수개월째 기관장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찍어내기 논란으로 소송전이 벌어진 곳도 있다. 이런 속에서 여러 지자체에서는 단체장과 이들이 임명하는 산하기관장 임기를 똑같이 맞추는 ‘임기 일치 조례’ 제정 움직임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첫발은 대구시가 뗐다. 대구시와 시의회는 지난 7월 홍준표 시장 취임 뒤 정무직 공무원과 산하기관장 임기를 시장 임기와 일치시키는 것을 뼈대로 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면 시장 임기 개시 이전에 임명됐던 정무·정책보좌공무원, 출자·출연기관의 장과 임원은 남은 임기와 상관없이 임기를 일괄 종료하도록 규정했다. 강제적 물갈이를 통해 임명권자와 정무직 인사 사이 임기 불일치로 발생하는 여러 논란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례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선명성을 보여준다. 소모적 논쟁을 없앨 수 있다는 명분으로, 단체장 소속 정당과 지방의회 다수당이 바뀐 곳을 중심으로 임기 일치 조례를 제정하려는 지방정부들이 줄을 서고 있다. 경기도에선 이천시와 용인시가 이미 조례를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용인시의 경우 전임 백군기(더불어민주당) 시장이 임명한 용인시정연구원장이 해임되자, 이상일(국민의힘) 현 시장이 찍어내기에 나선 것이라며 반발해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조례 제정을 두고 갑론을박 중인 지방정부도 있다. 여야가 78석씩 나눠 가진 경기도의회에선 국민의힘이 조례안 제정에 나섰지만, 최근 열린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보류됐다. 도 산하 27개 공공기관장과 임원의 임기가 동시에 종료되면 업무 연속성을 해치고, 단절과 공백으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민주당에서 반대했다. 민주당은 또 산하기관 임직원 채용은 해당 기관 정관에 따라 이뤄지는데, 조례에서 임기를 규정하는 것은 해당 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진 뒤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일단 조례 심의를 미뤘다. 서울시의회 등에서도 같은 이유로 보류했거나 부결했다.

주민들의 선택을 받은 새 단체장이 자신의 정치·행정철학을 현장에서 구현할 산하기관장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민과의 약속인 공약 이행이나 행정 이해도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산하기관장의 임기를 꼭 단체장과 일치시켜야 할까. 지방정부는 해당 분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별도로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전문가를 선임해 기관 운영을 맡긴다. 기관장 임기를 보장한 이유는 기관 설립 목적에 맞게 기관을 운영하도록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결국 임기 일치 조례 제정 움직임은 산하기관장 자리를 ‘당선 전리품’으로 여겨 밥그릇을 챙기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사실 선거 뒤에는 논공행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형식상 공개채용이지만, 사실상 후보는 내정된 상태다.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선거에 기여한 공신은 많은데 ‘자리’는 한정적이고, 이런 속에서 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관장 일괄 사퇴 압박, 감사를 동원한 찍어내기 등 구태가 발생한다.

임기 일치 조례는 손뼉 칠 만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산하기관 업무 단절과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먼저다. 제도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두고서 ‘내 사람 챙기기’에만 급급해하는 태도는 문제다. 이른바 ‘코드 인사’, ‘패거리 정치’의 폐해는 중앙정치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나.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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