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악순환을 막을 길은 없는가

고명섭 2022. 11. 29. 19: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명섭의 카이로스][고명섭의 카이로스]

정권교체가 정치의 안정과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힘과 좋은 힘이 경쟁하는 방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나쁜 힘이 좋은 힘을 제압하는 방식의 정권교체라면 그런 교체는 정치의 성숙도 나라의 발전도 가져오지 못한다.

로마 역사 탐구를 통해 정체순환론을 정립한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폴리비오스(기원전 200~118)는 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3대 역사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특이한 것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그리스의 역사를 소상히 살핀 것과 달리 폴리비오스는 이웃나라 로마의 역사에 관심을 품었다는 사실이다. 폴리비오스는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i)와 동일한 제목으로 쓴 역사서에서 투키디데스와 같은 엄정한 눈으로 도시국가 로마가 지중해의 제국이 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왜 그리스인 폴리비오스는 남의 나라 역사를 기록하는 데 그토록 마음을 쏟았을까?

폴리비오스를 로마역사 탐구로 이끈 운명적 계기가 된 것이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이다. 펠로폰네소스반도 메갈로폴리스 출신이었던 폴리비오스는 고등교육을 받은 뒤 군인으로 이력을 시작해 젊은 나이에 장군이 됐다. 기원전 168년 로마의 지배를 받던 마케도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세번째 마케도니아 전쟁이었다. 마케도니아 동맹국들이 전쟁에 참여했고, 폴리비오스도 메갈로폴리스의 장군으로 참전했다. 전쟁은 마케도니아의 참패로 끝났다. 로마군은 피드나전투에서 마케도니아 동맹군을 격파하고 이듬해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를 사로잡았다. 마케도니아왕국은 멸망하고 로마는 지중해 동부를 장악했다.

승리한 로마군은 그리스인 1000명을 볼모로 잡아 로마로 데려갔는데, 그 무리에 폴리비오스도 들어 있었다. 폴리비오스의 볼모생활은 17년 동안 계속됐다. 그때 폴리비오스를 절망에서 구해준 사람이 로마 집정관으로서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지휘한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였다. 아이밀리우스는 폴리비오스의 학식을 알아보고 두 아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겼다. 아이밀리우스가 폴리비오스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다시 구렁텅이에서 빼낸 셈이다. 폴리비오스가 가르친 아이밀리우스의 아들 가운데 한사람이 훗날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이끈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다. 스키피오는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한니발을 무찌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손자였던 터라 뒤에 할아버지 ‘대스키피오’에 이어 ‘소스키피오’로 불리게 된다.

스키피오는 당대 로마 최고의 인문학 모임이었던 ‘스키피오 서클’의 중심인물이었다. 폴리비오스는 스키피오의 스승으로서 이 서클의 젊은이들에게 그리스의 문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기원전 150년, 17년 볼모생활이 끝났다. 조국으로 돌아간 폴리비오스는 이듬해 스키피오가 제3차 포에니전쟁 사령관이 되자 옛 제자를 따라나섰다. 이 전쟁에서 로마는 카르타고에 최후의 일격을 안김으로써 지중해 전역의 패자로 올라섰다. 폴리비오스는 로마가 동서 양쪽으로 거대한 날개를 펴고 제국으로 날아오르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폴리비오스의 마음속에서 ‘왜 그리스는 몰락하고 로마는 흥기하는가’ 하는 물음이 일었다. 그 탐문의 결과가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제3차 포에니전쟁까지 118년 로마역사를 40권의 방대한 규모로 기술한 <역사>다.

그 저작에서 폴리비오스는 정치사상가의 눈으로 로마의 흥성 원인을 찾아가는데, 거기서 폴리비우스가 발견한 것이 로마의 독특한 혼합정체였다. 로마 공화정은 군주정에 해당하는 집정관 제도와 귀족정에 해당하는 원로원 제도, 그리고 민주정에 해당하는 호민관 제도가 서로 견제함으로써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 견제와 균형의 혼합정체가 로마 공화정의 안정과 성공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더 흥미를 끄는 것은 폴리비오스가 탐문 과정에서 ‘정체순환 법칙’을 확립했다는 사실이다. 정치체제가 하나로 머물러 있지 않고 순환한다는 법칙이다. 자연 만물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듯 정치체제도 나고 자라 시들어간다. 흔히 서양의 역사관을 직선사관이라고 하는데, 이 사관이 성립한 것은 기독교 종말론이 널리 퍼진 뒤의 일이다. 그 전에는 역사가 끊임없이 원을 그린다는 순환사관이 더 일반적이었다. 이 순환을 정치영역에서 법칙으로 세운 사람이 폴리비우스였다.

폴리비우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정체순환론을 확립한 것은 아니다. 폴리비우스 이전에 정체순환론과 유사한 정체변동론을 정식화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제4권에서 올바른 정치체제로 군주정과 귀족정과 온건 민주정을 꼽았다. 이 세 정체는 통치자가 일인이냐 소수냐 다수냐 차이는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군주정 곧 바실레이아(basileia)는 군주가 왕도를 따라 다스리는 나라이고, 귀족정 곧 아리스토크라티아(aristokratia)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 곧 현인들이 다스리는 나라다. 또 온건 민주정,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폴리테이아(politeia)라고 부른 정체는 민중이 지배하되, 현인들과 함께 법률과 정의에 따라 다스리는 나라다. 그러나 이런 정체들은 타락하기 십상인데, 군주정이 타락하면 최악의 정체인 폭군정이 되고 귀족정이 타락하면 과두정이 되며 온건 민주정이 타락하면 ‘중우 민주정’이 된다. 이 타락한 세 정체는 모두 공익을 팽개치고 사익을 탐하다가 나라를 망가뜨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폴리비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체변동론을 이어받아 이 정체들이 역사적으로 순환한다는 정체순환론으로 변형했다. 최초의 정체는 원시 전제정(monarchia)이다. 동물세계에서 볼 수 있듯이 무리 가운데 가장 강한 자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이 원시 전제정 아래서 선악과 정의의 관념이 서면, 신민의 동의를 얻어 법률에 따라 통치하는 군주정이 성립한다. 군주정은 후대에 가면 세습군주가 선대의 통치를 잊고 폭력과 공포로 다스리는 폭군정이 된다. 그러면 폭정을 견디지 못한 소수가 다수의 지지를 받아 폭군정을 무너뜨리고 귀족정을 세운다. 그러나 귀족정도 타락을 면하지 못하고 과두정으로 전락하고, 군주도 귀족도 모두 거부하는 민중이 스스로 권력을 장악해 민주정을 세운다.

그러나 이 민주정도 선동가들이 날뛰고 법치가 무너짐으로써 중우정(ochlokratia)으로 떨어지고, 무질서가 나라를 휩쓸면 다시 최초의 상태로 돌아간다. 정치체제는 이렇게 순환을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이 생성과 몰락을 반복하는 정체의 순환을 막을 방도는 없을까? 폴리비오스가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 혼합정체다. 군주정-귀족정-민주정의 장점을 살려 단일한 정체로 통합하면, 이 세힘 사이 긴장이 국가를 지속해서 떠받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폴리비오스는 그리스 폴리스들이 대개 단일 정체를 고수하다가 몰락에 이른 데 반해 로마 공화정은 혼합정체로 힘을 키워 지중해 패권을 쥐었다고 보았다.

폴리비오스의 이런 생각을 1600년 뒤에 다시 살려낸 사람이 마키아벨리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 제2장에서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자기 생각으로 펼쳐 놓았다. 정치체제의 역사는 군주정에서 폭군정으로, 폭군정에서 귀족정으로, 귀족정에서 과두정으로 이어진다. 공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인들의 통치가 부유한 소수 특권층의 지배로 전락하면, 다시 말해 귀족정이 과두정으로 떨어지면, 성난 민중이 이 타락한 정체를 무너뜨리고 민주정을 세운다. 그러나 민주정도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고 ‘공적 권위’와 ‘타인 존중’이 사라지면 결국 ‘무정부 상태’가 된다. “이것이 모든 국가가 통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순환이다.” 어떤 정체든 공동선이 흩어지고 사익 추구가 정치의 목적이 되면 그 정체는 파멸을 피할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폴리비오스의 견해를 받아들여 이런 파멸의 순환을 막으려면 군주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의 장점을 살린 혼합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혼합형 공화정은 그 뒤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과 미국 헌법을 거쳐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의 표준이 됐다. 또 이 혼합정체가 보편성을 확보한 뒤로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을 밀어내고 정권교체론이 들어섰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가 번갈아가며 정권을 맡을 때 정치가 안정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권교체가 정치의 안정과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힘과 좋은 힘이 경쟁하는 방식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나쁜 힘이 좋은 힘을 제압하는 방식의 정권교체라면 그런 교체는 정치의 성숙도 나라의 발전도 가져오지 못한다.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정치 변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고 공익에 헌신하는 마음을 앗아감으로써, 사익과 탐욕이 법의 정신을 비웃으며 활개 치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를 부른다. 이 역사의 악순환을 저지할 길은 없는가.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즐거운 지식>,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