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노동자 다치게 하는 알고리즘에 ‘디지털 배반’ 절감했죠”

강성만 2022. 11. 2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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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서울과학기술대 이광석 교수
이광석 교수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이광석(54) 서울과학기술대 아이티(IT)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학과 교수는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설립 이듬해인 1995년부터 이 사이트에서 책을 사기 시작했다. 중앙대 대학원을 다니던 199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의 매력에 흠뻑 빠져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사이버커뮤니케이션 연구반을 꾸렸고 미국 유학 시절인 199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 최신 기술 동향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전하는 기고 활동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가 초기 인터넷에서 불평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극복할 가상공동체 해방구의 기능을 봤듯 그 역시 인터넷이 매개하는 사이버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컸다.

하지만 그가 2010년대 이후 펴낸 책 <디지털 야만>(2014), <디지털의 배신>(2020), <피지털 커먼즈>(2021) 등을 보면 이런 기대와 믿음을 찾기 힘들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인터넷은 자본의 사유화 논리가 지배하면서 기업들의 무자비한 돈벌이 터로 변질했고 심지어 플랫폼 기업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노동자의 신체까지 위협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난히 새 기술에 관대한 한국 정부는 디지털 패권을 향한 기업의 질주에 발을 맞추면서 노동권이나 정보 인권에는 손을 놓고 있다.

최근 <디지털 폭식 사회>(인물과사상사)를 낸 이 교수를 지난 28일 서울 노원구 서울과학기술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올해로 창간 30돌인 문화연구저널 <문화/과학> 공동편집인을 4년째 맡고 있는 그는 문화운동단체인 문화연대 집행위원도 겸하며 신기술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돕는 강연 기획과 교육 자료집 제작을 이끌고 있다.

이광석 교수 신작 <디지털 폭식 사회> 표지.

그는 신작에서 인터넷이 인간의 자유로운 소통과 평평한 관계를 강조하는 ‘사이버공간’에서 현실 같은 가상의 실재감에 무게가 쏠린 ‘메타버스’(현실의 상호 작용을 가상공간에 구현한 콘텐츠 등을 가리키는 말)로 변화하는 양상에 대한 설명으로 ‘디지털 폭식 사회’에 대한 논의를 열었다.

“현실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기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사이버공동체라면, 메타버스는 자본이 중심이죠. 소비 없이는 살 수 없고 디지털 민주주의는 1도 없는 곳입니다. 메타버스는 현실 논리와 디지털 세계가 혼합된 거대 기술기업 주도의 문화산업 구상에 불과해요.”

그는 책에서 거대 기술기업의 ‘알고리즘 경영’ 폐해도 주요하게 살폈다. 인터넷에 열광했던 그가 ‘디지털의 배신’을 절감한 것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무자비한 노동통제”를 봤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업무 지시를 내리는 플랫폼 노동이 한국 사회에 들어온 게 4~5년 전일 겁니다. 그런데 이 기술이 ‘배달 예상시간’ 같은 도구로, 플랫폼 배달 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내려 결국 노동자들을 다치게 하더군요. 그 전에는 디지털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인터넷은 초기에 시민 여론을 만드는 공론장 구실을 했지만 지금은 카카오나 유튜브, 페이스북 등 거대기업의 ‘조회수 알고리즘 기술’에 갇히면서 오히려 진실에 기반한 대화와 소통까지 가로막고 있단다. “공론장 기능은 사라지고, 트위터에서 보듯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 공간 기능 정도만 살아 있죠.”

90년대 대학원 시절부터 인터넷 연구 ‘사이버공동체 해방구’ 역할에 끌려 2010년대 들어 ‘디지털 폐해’ 경고 “자본 지배·기업 돈벌이 터 전락”

신간 ‘디지털 폭식 사회’ 경고음 높여 “한국은 신기술에 너무 관대해 문제”

그는 한국 사회 ‘디지털 폭식’의 한 예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히 늘고 있는 무인주문기(키오스크)를 들었다.

“키오스크 때문에 노년층 등 디지털 약자들의 소외감이나 스트레스가 심해요. 키오스크 도입 때 연령대별 접근성도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고려가 없었죠. 국가나 기업은 ‘비용 효과’만 보지 말고 인간과 기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지금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그는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중화학 공업처럼 기술을 성장주의와 발전주의의 도구로만 인식해 그 어떤 나라보다 신기술에 관대하다”며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할 때는 사회적 논의의 장이 다양하게 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공지능 면접은 현재 공기업도 활용할 정도로 대중화하고 있어요. 이 기술에 대해 공정성 논란도 있지만 사회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신기술은 소금 섞인 빵에서 소금을 없애기가 어려운 것처럼 한번 정착하면 떼어내기 무척 어려워요.”

그는 한국 사회가 ‘디지털 폭식’으로 치닫는 데는 거대 기술기업의 조력자 구실에만 충실한 국가의 책임이 크다면서 재작년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데이터 3법’을 예로 들었다.

“한국의 개인정보 오남용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천만명 이상 개인정보 유출 건수가 미국에 이어 2위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개정한 법을 보면 ‘가명정보’라는 이름으로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의 사적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게 했어요. 이전까지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론이 균형을 이뤘다면 이 법으로 활용론이 대세가 됐죠. 가명이라고 해도 데이터가 모이면 특정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값이 만들어집니다. 신상털기가 쉬워지는 거죠. 기업들이 이렇게 정보를 모으면 우리의 일상을 투시할 수 있는 힘이 커집니다. 기업이 개인의 욕망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어요.”

그는 중앙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2008년 텍사스 오스틴주립대에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의 공모 과정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광석 교수는 자신이 <문화/과학> 공동편집인을 맡은 뒤로 판형과 디자인을 바꾸고 전문교열자까지 쓰면서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되는 부수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밝혔다. 강성만 선임기자

디지털의 배신이나 폭식에서 벗어날 길은 있을까?

“기술이 민주적 가치를 확장하는 쪽으로 가야죠. 기술을 매개로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도 늘어나야 하고요.”

그는 희망의 사례로 미국 뉴욕 지역에 거주하는 남미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청소용역 플랫폼 ‘업앤고(UP & GO)’를 제시했다.

“노동자들이 주도하고 뉴욕시 비영리컨설팅과 투자 및 디지털 기술 지원 단체들이 힘을 보태 만든 플랫폼 협동조합입니다. 이 플랫폼이 생긴 뒤로 노동자들 급여가 크게 오르고 노동인권도 개선됐다고 해요.”

그는 이어 “한국에서도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데이터를 시민을 위해 활용하는 ‘데이터 민주주의’가 미력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면서 기업 이익과 사회 공헌을 함께 추구하는 스타트업이 더 많이 나오도록 국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구계획을 묻자 그는 ‘기술과 생태’라고 답했다.

“아이티 부품에 희귀금속인 희토류가 들어가는데요. 희토류 1㎏을 얻으려고 심지어 산 하나를 파헤치기도 한답니다. 아이티 폐부품에서 희토류를 분리하기도 어렵고요. 그만큼 아이티 기술이 인간 사회는 물론이고 자연 생태에 끼치는 영향이 크죠. 제가 보려는 생태는 자연-사회 양쪽에 걸쳐 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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