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 아티스트 서민경 “글씨에 마음을 담고 작품에 영혼을 담아”[이 사람]

강석봉 기자 입력 2022. 11. 29. 18:23 수정 2022. 11. 2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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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아 쓰는 글씨 서민경 ‘어쩐지 디자인 연구소’ 대표
“캘리로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어나는 화두를 던져”
서민경 어쩐지디자인연구소 대표


무뚝뚝하던 한글이 패셔니스타로 거듭났다. 고정관념에 짱돌을 던진 이는 한글 캘리그라피 서민경 작가다. ‘돌아이’에게 ‘짱돌’은 머리를 깨는 무기지만, 서민경에게 ‘짱돌’은 ‘생각’을 여는 열쇠다. 결국 ‘짱돌생각’은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물수제비란 얘기다.

한글 캘리그라피는 일러스트와 캘리를 접목한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서민경 작가는 캘리그라피의 이론과 글씨의 디자인과 사투를 마다하지 않는 어쩐지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어차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업이기에, 캘리테라피와도 맥이 닿아 있다. 망월사역 앞에 위치한 어쩐지디자인연구소에는 마에스트로 서민경 작가와 그와 왈츠를 추는 한글이 두 손 맞잡고 쇼팽을 기다리고 있다.

캘리그라피와 캘리테라피는, 같은 듯 다른 듯하다?


일반적으로 캘리그라피라고 하면 막연히 예쁜(?) 글씨를 쓰거나 독특하게 글씨를 쓰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라. 조금 더 깊이 있게 안다면 ‘마음을 담아 쓰는 글씨’라고도 얘기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설명이 한 참 부족할 수 있다.

- 마음을 담아 쓴다? 철학적으로 들린다. 어떻게 쓰는 게 마음을 담아 쓰는 것인가.

글자나 문장은 필연적으로 어떤 메시지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자가 가진 내용과 의미를 얼마나 다양하게, 얼마나 제대로 표현해내는지가 소통의 크기를 좌우한다. 또 어떤 내용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는 늘 작가의 중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다. 이 지점이 마음을 담는 과정쯤으로 보면 된다.

그림이나 음악처럼 남들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특별히 노래를 잘할 수 있는 그런 한정된 것이 아닌 캘리는 한글을 알기만 한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런 누구나 쓰는 한글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 어떤 분야에 비해 보더라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글자의 형태나 내용을 무엇인가 다르게 표현하고 문장들을 함축하려고 이래저래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런 점에서 단지 글씨를 예쁘게 쓴다거나 독특하게 쓴다라는 것만으로는 캘리그라피를 설명하려면 부족하다.

고전문학을 공부하려면 ‘삼독’을 해야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글자를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듯하다.


삼독이란 처음엔 문장의 내용을 읽어내야 하고, 두 번째는 그 글을 쓴 작가의 생각을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탈문맥’해 나를 읽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캘리테라피를 할 때 정말 유사하고 유용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품을 할 때나 연습을 할 때도 유명한 책의 글귀나 드라마의 명대사 혹은 명언 등을 그대로 써서 작업을 하지 않는다. 어떤 문장이나 글자라도 내 이야기로 글을 쓰게 한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진심이 담긴 자기 생각과 마음을 담아 써야 한다. 때론 눈물, 콧물도 찍어내고 화도 내고 깔깔거리고 박장대소도 하며 그렇게 쓰고 그린 것들이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어 전달되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캘리테라피와 연결돼 ‘치유’의 의미를 갖게 되는 거다.

특별한 전시회를 하기도 한다던데….


캘리 작업


캘리그라피는 자가 발전 전시를 많이 한다. 단체전이나 회원전 등의 그룹전이나 개인이 사비를 들여 하는 개인전 등은 많지만 미술전시나 음악공연처럼 외부로부터 초대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지, 최근 천안에 있는 ‘그레이스 세븐’ 갤러리에서 열린 ‘짱돌생각 서민경 작가초대전’이 그것이다. 작가초대전으로는 네 번째 전시회다.

주최측의 ‘초대작가 선정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선택되었다더라. 내 작품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고는 얼마나 더 놀랍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번 전시는 ‘글:쎄다’전이라고 전시명을 붙였다. 글과 글씨, 그림이 만나 우리를 한순간에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그렇게 위로도 하는 그런 글의 힘을 제목으로 정했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고 작품 판매도 충분히 되었다.

작가는 그 길을 가기도 힘들지만, 선택하기도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가 된 동기는.




뭔가 늘 쓰고 그렸던 거 같다. 디자인을 전공해서인지 저작권 같은 것에도 예민하고 남의 것을 따라 하는 것도 재미가 없더라.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뭔가 생각하고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캘리를 알고 나서는 캘리로 쓰고 표현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엉뚱한 내 생각과 글이 작품으로 표현되는 게 신났다.

아호가 한글 ‘짱돌’이더라. 이유는 뭔가.


아호를 한자를 쓰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한글 캘리그라퍼’니까 한글 호를 쓰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짱돌’이라는 강한 느낌이지만, 여자인 내가 쓰니 반전의 재미가 있다고 하더라.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그림도 풍경화보다는 인물화가 훨씬 더 좋다. 그중에도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독서치료나 미술심리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

‘짱돌’이라는 호를 생각한 건 내가 들었던 ‘독서치료’ 종강 수업 때의 질문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때 내 질문은 “독서치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바로 ‘발문’이란 답을 주셨다.

좋은 발문이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그 호수에 잔잔한 파문이 일듯 그렇게 수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때 생각했다. “아, 나는 그걸 캘리로 해야겠다”고.

대표작으로 소개할 만한 작품은


사진 왼쪽부터 바느질곰 (2019년작), 내 두려움에 맞서기 (2017년작)


대표적 작품으로는 ‘바느질하는 곰’, ‘미스테리가족사’, ‘엄마잔소리’, ‘퇴근합니다’, ‘멍멍이’, ‘세상젤로맛있는밥’, ‘나는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등이 있다.

아직 소개한 적은 없지만 캘리를 활용해서 만든 욱녀/욱남(가칭) 이모티콘도 있다. 그밖에도 다양한 캘리소품이나 달력 같은 굿즈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몇 년 전 경찰서 수업을 했던 일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어느 날인가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최근 들었던 말 중에 제일 기분 나빴던 말을 한번 써보라고 했다.

육두문자여도 상관없으니 편하게 쓰라고 했더니, 정말 욕을 쓰더라. 그리고 나서 한 명씩 그 말을 듣게 된 간단한 사연과 누구로부터 들은 말인지를 들었다. 대부분은 가장 가까운 부모나 친구에게 들은 말들이더라. 우리는 같이 화내고 탄식하며 그 이야기들을 들었고 그다음으로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들을 적어 보라고 했다.

“넌 너무 잘생겼어~”, “잘했어~”, “니가 최고야”, “너가 제일 좋아”.

별 힘도 들지 않는 그런 말들을 써낸 아이들에게 우리는 서로서로 한 사람씩 그 말을 크게 해주고 함께 키득키득 웃었다. 무슨 캘리 수업이 이러냐 싶겠지만 그러고 나서 자기가 가장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들로 캘리를 써서 소품을 만들었다.

매회 단 한 번씩만 만나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때 그 아이들의 미소와 어딘지 마음 한켠에 아렸던 그날의 수업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작업을 할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연구소(공방)에서의 수업 외에도 교육지원청 같은 청사 수업이나 신한대학교 의정부 미디어센터 같은 외부 출강 등이 많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외부 수업은 전면적으로 폐지되고 공방 내 모든 수업도 일대일로 전환했다. 올해부턴 조금씩 개강이 되기도 했지만 수업의 변화가 어렵다면 어렵다.

캘리그라퍼가 지금 우후죽순 양성되고 있다. 난립에 문제가 있을 듯 보인다.


요즘은 유튜브 몇 시간만 듣거나 동사무소 수업 몇 번 만에도 자격증이 발급된다. 그렇게 발급받고 난 후에는 너도나도 캘리그라피 작가라며 글을 쓰고 올린다.

캘리그라피가 예술이라고 하면서 자격증을 준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 예술가 자격증이 말이 되나? 캘리그라피 작가 자격증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대체 그 작가 자격증을 주는 사람은 무슨 자격으로 그걸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모든 자격증이 다 민간 자격증이다.

작가는 자격증이 아니라 작품으로 증명되고 또 대중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연구소에도 자격증반을 하겠다고 찾아오면 먼저 취미반부터 해보라고 권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서민경 어쩐지디자인연구소 대표


초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됐지만 작가의 숙명처럼 꾸준히 작품을 하는 것이고 책을 내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기회가 된다면 ‘캘리그라피 이론서’와 ‘짱돌생각’의 작품들을 모아 ‘일러스트캘리 에세이집’을 내고 싶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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