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총회는 왜 매년 ‘꽝’ 나는 걸까요?

남종영 2022. 11. 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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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쫌’ 아는 기자들]A. 부자나라들이 ‘놀부 심보’니까 그렇죠.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에서 두번째) 그리고 프랑스의 로랑 파비우스 외무장관(가운데)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최종 합의문을 발표하고 박수를 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7)가 폐막일을 이틀 넘겨 새벽까지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 20일 끝났어요. 국제사회가 기후변화로 개발도상국에 집중된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기금을 설립한다는 것 말고는 별 소득이 없었죠. 게다가 이 합의조차도 누가, 얼마나, 무엇에,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당사국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기금도 과거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갖는 ‘배상’이나 ‘보상’이 아닌 ‘지원’ 성격이어서 각국 정치인의 생색 내기에 그쳤다는 비판도 있죠.

유엔기후변화협약은 1992년에 체결됐어요. 하지만 30년 동안 기후변화총회는 해마다 ‘꽝’만 났어요. 매년 각국 정상이 모여 ‘지구를 구하겠다’고 멋진 소리를 해서 가슴 들뜨게는 했지만, 그나마 이룬 합의조차도 제대로 실행된 적이 없었어요.

왜 그럴까요?

첫째는 부자나라 때문이에요.

당사국총회에는 다수의 협상 그룹이 참여해요. 먼저 유럽연합이 있고요,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 비유럽 선진국의 모임인 엄브렐라 그룹이 있어요. 반대편에는 개도국으로 이뤄진 주요 77개국(G77) 그룹이 있는데, 보통 중국과 보조를 맞추죠. 한국은 스위스 등과 함께 2000년부터 환경건전성그룹(EIG)을 결성해 협상에 나서고 있어요.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협상 전선은 ‘선진국 대 개도국’이에요. 사실 당사국총회 30년 역사는 양자의 외교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진국은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를 감축하자는 ‘기후정치’를 창안하고 주도하는 나라들이죠. 미국이 속한 엄브렐라 그룹보다 유럽연합이 더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이죠.

그렇다고 이들을 독수리 5형제 같은 지구특공대로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지구의 위기’를 기회로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관철하려는 사람들이거든요.

한겨레 인포그래픽팀

이를테면, 올해 당사국총회에서 선진국은 개도국의 요구로, 손실과 피해 기금을 만드는 걸 최종적으로 ‘오케이’했어요. 그러면서도 “보상이나 배상은 아니야” 하고 선을 그었죠. 보상이나 배상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내야 할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아진다는 걸 아는 거죠. 당사국총회에서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페루의 한 농부는 독일의 유력 전력기업을 상대로 자신이 사는 도시의 홍수 예방비용을 내라는 소송을 벌이고 있어요. 지난 8월 <한겨레> 기후변화팀이 ‘세계는 기후소송 중’ 기획 기사에서 다룬 바 있는데, 만약 선진국에서 법적 책임을 지는 배∙보상을 한다고 하면, 이런 기후 소송 판결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과거 온실가스를 배출해 지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선진국이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순간 끝장이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당사국총회 협상에서 선진국은 기후변화 책임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앞장서 주장하는 건 유럽연합 같은 선진국 아니냐고요? 순진하긴요∼.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개도국은 풍력발전소에 들어가는 터빈 같은 걸 수입해야 하고, 각종 저탄소 기술을 도입해야겠죠. 그 기술과 자본을 가진 게 선진국이에요. 화석연료 체제에서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경제적 주도권을 쥐려는 거예요.

미국은 더 문제적이에요.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개도국도 선진국과 똑같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져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해왔거든요.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이를 이유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기까지 했어요. 교토의정서는 2008~2012년 선진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5.2% 이하로 감축한다는 약속이었죠.

2017년 11월 페루 안데스산맥의 소도시 우아라스에 사는 농부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사진 오른쪽·뒤를 돌아보고 있는 이)가 독일 함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도시의 홍수 예방비용을 독일의 전력기업 아르베에(RWE)가 부담하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선진국의 역사적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역사적 재판이이다. 우아라스/EPA 연합뉴스

한국 초대 기후변화대사를 지낸 정내권 전 대사는 기후변화 협상이 계속 헛물을 켜는 이유의 알파이자 오메가를 미국이라고 봐요. 그리고 그 근원에는 1997년 미국 상원에서 통과한 ‘버드-헤이글 결의안’이 있다고 보죠. 이 결의안은 “중국∙인도 등 주요 개도국들이 미국과 동등한 법률상 의무를 수락하지 않는 한 미국 정부는 어떠한 기후협약 상의 의무도 부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죠.

미국을 앞세운 선진국은 개도국에 똑같은 감축 의무를 지라고 요구했고, 개도국이 “그건 불공평해. 그건 못하겠어” 하니, “그럼, 우리 선진국도 못해”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개도국 입장에서 동등한 감축 의무를 지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요? 개도국의 성난 목소리가 들리네요.

“싼값으로 화석연료 때서 경제 발전하고 개도국에서 식민지 놀이한 게 당신들 선진국 아닙니꽈~~~?”

둘째,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의 한계 때문에 세계적인 기후 대응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요.

파리협정은 세계 각국이 힘을 합쳐 ‘산업화 대비 지구 기온 상승치를 1.5도 이내로 줄이거나’ 그게 어렵다면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지키자’는 내용이에요. 미국 등의 탈퇴로 교토의정서가 난항을 겪자, 세계가 새로 약속을 맺은 거죠.

당시 협정 체결 당시 참가자들이 얼싸안고 울었다고 하던데, 냉정히 말하자면 저는 큰 포부에 비해 허접한 결과였다고 봐요.

한겨레 인포그래픽팀

파리협정은 각국의 ‘자발적 감축’에 기대고 있어요. 각국이 아이엔디시(INDC·Intended Nationallly Determined Cotribution)를 정해 지키기로 한 거죠. INDC라… 좀 어렵죠? 번역하자면, ‘각국이 스스로 의도해 결정한 기여’라는 건데, 약속(commitment)도 아니고 행동(action)도 아닌 기여(contribution)라는 말이 쓰였다는 점에 주의해야 해요. 강제성, 의무성 같은 걸 뚝 떼버린 거죠. 어쨌든 아이엔디시는 우리가 신문 기사에서 가끔 접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가리켜요. 즉, 각국이 언제까지 얼마만큼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출하고, 5년마다 이행점검을 받는 것, 그게 바로 파리협정이랍니다.

이거, 자기주도학습이랑 비슷하네요. 스스로 숙제를 내고, 검사를 맡는 시스템이죠. 그런데, 숙제 안 했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는 조항이 협정에는 없어요. 스스로 숙제를 내게 하고, 강제성도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애당초 하기 쉬운 숙제를 내는 사람, 숙제를 안하는 사람 등이 생기겠죠. 기후 협정도 다르지 않아요. 온실가스 감축량을 낮게 설정하는 국가, 감축 목표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 등이 생기는 거에요.

반면, 1992년 합의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 구체적인 감축량을 제시한 강제적 협약이었어요. 물론 아무도 지키지 않아 ‘꽝’이 나긴 했지만요.

정내권 전 대사는 자신이 쓴 책 <기후담판>에서 “기후변화 협상이란 한 마디로 전 세계가 미국 상원의 버드-헤이글 결의안 하나와 싸운 것”이라고 요약해요.

냉정하게 생각해보죠.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안 지고, 경제적 기회로 활용하려고만 하는 놀부 나라들 앞에서 가난한 개도국이 온실가스를 ‘자발적으로’ 줄이려고 할까요? 기후변화 협상의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먼저 선진국,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이 바뀌어야 해요. 개도국 그룹과 연합 전선을 펴는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미국의 통 큰 양보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 점에서 올해 당사국총회에서 나온 구체적 내용 없는 ‘손실과 피해’ 기금 설립안은 선진국의 쪼잔한 수준을 보여준 거 같아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아… 지구의 미래는 있는 겁니꽈∼∼?

기후변화 ‘쫌’ 아는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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