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과기정통부의 ‘아니면 말고’식 온실가스 감축 계획

최정석 기자 입력 2022. 11. 29. 17:33 수정 2022. 11. 3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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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석 기자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백업 플랜이라든가 실패에 누가 책임을 지겠다거나 그런 건 정해둔 게 있습니까?”

지난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 기본계획 공청회 현장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에서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 기본계획에 대한 설명을 끝낸 뒤 현장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던 상황이었다. 질의응답을 진행하던 에너지 분야 전문가 5명 모두 허를 찌르는 질문에 당황한 듯 잠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20초 정도 이어진 침묵을 깬 건 김종남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이었다. 김 원장은 마이크를 들고 “좋은 지적 감사하다”며 “기본계획을 통해 내건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도 고민해보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 기본계획(기본계획)’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에 필요한 기술을 국가 차원에서 확보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법제화한 것이다. 향후 10년간 여러 관계부처가 탄소중립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데 있어 명확한 방향성과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날 공청회는 평소 탄소중립에 관심이 많았던 일반인들도 참여해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였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어떻게 대처하고 누가 책임질 거냐는 질문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질의응답을 진행한 5명의 전문가들은 기본계획 수립을 주도한 공무원들과 민간 자문단 역할로 나선 대학 교수들이다.

과기정통부 측은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반영한 기본계획 최종안을 올해 안에 발표한다고 했다. 그러나 기본계획에서 내놓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사후대처 방안이 필요하지 않냐는 지적은 최종안에 반영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계획 수립에 핵심 역할을 했던 과기부 측 고위 관계자는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여러 관계부처 추진위원회, 산·학·연 민간 전문가 등 70명 넘는 사람들이 올해 1월부터 매달린 끝에 기본계획을 거의 완성해냈다”며 “백업 플랜이 필요한 건 맞지만 이를 세우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기본계획은 정부가 탄소중립 관련 기술 연구개발을 지원할 의무를 명시한 법 조항 중 가장 상위에 있다. 앞으로 추가될 수 있는 모든 세부적인 법 조항의 밑바탕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때 이를 어떻게 만회할 건지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사실상 ‘안 되면 말고’ 식으로 무리하게 탄소중립 목표를 잡은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술 연구개발에 쓴 나랏돈만 3조4000억원이다. 최근 6년간 연평균 6.3%씩 늘었다. 투입되는 국가 재정에 비해 기본계획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기본계획에 포함된 일부 목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회의적인 시선이 벌써부터 있다는 점이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출연연 측 고위 관계자는 “태양광, 수전해, CCUS(탄소 포집·저장 기술) 등 기본계획에 들어간 여러 기술 목표들 중 CCUS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32년까지 매년 1030만t씩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땅에 묻거나 다른 물질로 바꿔 재활용하는 게 목표인데 이 정도 CCUS 기술력을 지닌 국가는 현재 거의 없다”며 “지난해 말 정부가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해 2018년 대비 40% 이상 온실가스를 감축한다 발표했는데, 이에 맞춰 기본계획을 짜다 보니 무리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CCUS 목표치를 낮출 수도 없다고 한다.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기술 분야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줄이면 다른 분야가 목표치를 올려야 해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기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지난 20여년 사이 지구 표면 온도는 섭씨 0.5도 올랐고 해수면은 8㎝ 상승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한국을 둘러싼 바다 해수면은 2030년까지 최대 11㎝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례없이 강력한 가뭄, 폭염, 폭우, 산불 등 재해가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위기 앞에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판단이다. 목표를 높게 잡는 건 좋지만 실현 불가능하다면 의미가 없다. 정부는 국가가 보유한 기술적 역량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지휘해야 한다. 조 단위 국가재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경우 이를 어떻게 만회하고 누가 책임질지도 정해야 한다. 정말로 온실가스 감축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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