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경제안보 게임의 다층적 단면들

2022. 11. 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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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보조 맞추던 獨 총리
경제사절단 끌고 방중회담
그 뒤에선 中투자제한 검토
국제관계서 '한입으로 두말'
이익 우선의 관점에선 당연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있겠지만, 한자어를 몇 개 써보자. 친성혜용(親誠惠容), 우호호신(友好互信), 이익융합(利益融合). 성의를 갖고 서로를 수용하고, 서로 믿고 잘 지내며, 이익을 함께 추구하자는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로 옮기면 포용, 신뢰, 호혜쯤 된다.

앞의 세 한자어는 10월 16일 시진핑 3연임을 결정한 중국의 20차 당대회 보고에 등장한 한국 등 인접국과의 외교관계에 대한 중국의 접근 원칙이다. 그리고 뒤의 세 단어는 대통령이 11월 11일 한·아세안 정상회의 석상에서 발표한 신(新)인도·태평양 전략의 3대 협력 원칙이다. 적용 대상은 다르지만 애초에 같은 말이다. 중국 측도 그렇게 볼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의 인·태 전략에 호응하여 중국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렇지만 한국이 이번에 제시한 포용, 신뢰, 호혜라는 협력 원칙은 중국의 당대회 보고와 정확하게 호응하였다. 그 직후인 11월 15일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복잡하고 모순되어 보이는 일들은 더 많다. 중국에 대한 비판에 미국과 보조를 맞추던 독일의 숄츠 총리는 시진핑 3연임을 축하라도 하듯 11월 4일에 베이징을 찾아 정상회담을 했다. 독일 대기업이 망라된 경제사절단을 이끌었다. 같은 날 중국은 170억달러 규모의 에어버스 132대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후 BMW는 중국 전기차 사업에 14억달러를 더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사절단에 동행했던 BASF는 광둥성에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 중이다.

독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주 외교전문지 폴리티코가 독일이 내밀하게 준비하고 있던 신(新)중국 전략의 초고를 입수해 보도했다.

여기에는 독일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하며, 관련 사항을 기업 공시에 포함시켜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보적 민감 분야에서 독일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입법도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 물건을 팔며 뒤로 칼을 간 셈이다. 중국이 발끈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과 배터리 공급망 장악을 막기 위해 미국과 협력해 온 유럽은 최근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이 중간선거 직전 반도체 및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통해 유럽 기업들의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외교통상부 장관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적 이익도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중국에 ASML의 장비를 파는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지만, 미국에 협조에 대한 보상을 제시하라는 신호일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는 미국의 맹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UAE 등 중동 국가들이 '대화 파트너' 자격으로 속속 참여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관심을 보였다. 시진핑 주석은 12월 초 사우디를 방문할 예정이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빈살만 왕세자를 만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지난번 그가 한국과 맺은 MOU들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카드로 활용될 것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하고 성동격서(聲東擊西)하며 때로는 표리부동하고 한 입으로 두말도 하는, 국제관계와 글로벌 비즈니스의 오랜 단면들이다.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이익을 우선한다는 일관성이 엄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한중 경제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2022년이 한미동맹 강화를 확인하는 해였다면, 2023년에는 한중 관계를 안정화하는 노력이 진행될 것이다. 단순한 과정일 리 없다. 이럴 땐 후련하게 정의를 실현하는 액션물의 관객이 되기보다, 부조리한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참을성 있는 독자가 되어야 한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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