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 BJ, SH 포함된 파일 삭제하라”…삼성 증거인멸 또 드러나

이정훈 2022. 11. 2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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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일감 몰아주기 수사과정서 드러나
공정위 현장조사 직전 조직적으로 벌여
삼성웰스토리. 누리집 갈무리

“총수, 회장, 제이와이(JY) 등이 포함된 파일을 삭제하고 문서를 파쇄한 뒤 결과를 보고하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감봉, 정직 등 인사조처를 하겠다.”

삼성이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를 앞두고 총수와 옛 미래전략실 등과 관련된 증거를 적극적으로 감춘 정황이 드러났다. 과거 삼성전자가 공정위 조사를 방해해 그룹 차원에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증거은닉 행위를 벌였다. 공정위도 검찰의 관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삼성이 공정위 현장조사 전 증거를 은닉한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추가 제재를 하지 않았다.

29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받은 공소장을 보면, 삼성전자와 삼성웰스토리는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현장조사에 대비하며 적극적으로 증거를 감췄다. 우선 2016년 5월,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은 ‘일감 몰아주기 대응 티에프(TF)’를 구성해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반박하는 논리를 만드는 동시에 현장조사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2017년 9∼10월엔 삼성웰스토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이니셜 ‘제이와이(JY)’, ‘비제이(BJ·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에스에이치(SH·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은 물론 총수, 회장, 미전실, 회장실, 실장님, 한남동,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 수의계약, 대관, 후원, 접대, 이익률 보전 등을 키워드로 선정해 관련 자료를 모두 없앴다. 키워드가 포함된 파일은 영구 삭제 프로그램 ‘파이널 이레이저’를 이용해 삭제하고, 문서는 파쇄한 뒤 결과를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행하지 않으면 인사조처를 하겠다는 경고까지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집단국을 신설해 일감 몰아주기 제재를 약속하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재벌의 급식 일감 몰아주기 실태 점검을 지시했다.

공정위 내부거래감시과 직원들이 삼성웰스토리를 현장 조사한 2018년 7월3일에도 삼성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현장조사 소식을 전해들은 삼성웰스토리 ㄱ임원은 직원들에게 ‘내부거래 현장조사 준비’ 등의 문서를 건네며 파쇄하라고 지시했다. 또 직원들은 ‘전자 매출가 이슈 정리’ 등 일감 몰아주기 관련 수십개의 문서를 현장조사 대상에서 멀리 떨어진 사무실로 옮겨 파쇄했다. 더욱이 관련 직원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공정위 현장조사가 이뤄지기 며칠 전에 이미 현장조사 임박 사실을 파악하고, 교체 신청을 통해 전산실로 옮겨진 뒤였다. 삼성웰스토리 전산실은 공정위 현장조사가 끝난 며칠 뒤 미전실 보고자료, 미전실 수명자료 등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자기장을 이용한 데이터 영구삭제)했다. 검찰은 이런 행위를 한 삼성웰스토리와 소속 임직원을 공정거래법 위반은 물론 증거인멸·은닉 혐의로 기소했다. 또 삼성전자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삼성의 증거인멸 행위는 과거에도 있었고, 재발 방지 약속도 했다. 2011년 공정위 직원들이 삼성전자 휴대전화 불공정 유통 행위를 조사하려고 수원사업장을 조사하려 나갔다가 제지당했고, 그 사이 증거자료가 사라졌다. 조사 대상 책임자는 주차장에 숨어 조사를 피했다. 2012년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관련 임직원들을 강하게 질책했고, 당시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관련 임직원 징계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당시 징계 대상이었던 박학규 당시 전무는 승진해 현재 삼성전자 디엑스(DX)부문 경영지원실장(사장)을 맡고 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과거 약속이 지켜지기는커녕 징계 대상자가 승승장구하며 과거 악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의 전 과정에 성실하게 임했다. 향후 재판 과정을 통해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도 삼성의 증거은닉 행위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해 6월 급식 관련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삼성전자와 삼성웰스토리 등에 과징금 2349억원을 부과하고, 삼성전자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조사방해와 증거은닉 혐의는 고발하지 않았다. 이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은닉 관련 증거가 추가로 확보됐지만, 지난 10월 검찰에 추가 고발만 했을 뿐 과태료 등의 처분은 내리지 않았다. 공정위는 2017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증거은닉 등의 행위에 대해 엄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 고발을 해서 추가로 과태료 처분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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