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칼럼] 머슴 산업부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2022. 11. 29. 17: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두 차례나 강조한
전 부처의 산업부화(化)
그러나 좋은 신발 신겨주는
그 정도까지만 해라

36년이나 지난 얘기다. 대한민국 관료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경제부처 사무관이 은행장, 대기업 사장들 오라 가라 했던 때, 끗발로 치면 재무부(현 기획재정부)가 단연 1등이었고, 그 뒤를 잇는 부처는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였다. 격세지감이다.

상공부가 두 번째로 힘센 슈퍼갑(甲) 부처에서 지금은 힘 빠진 을(乙) 부처로 처지가 바뀌게 된 건 1986년 공업발전법 개정이 결정적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상공부는 등록, 허가, 승인을 하는 규제 부처였다. 예를 들어 섬유공업을 하려고 하면 집기 설치 허가를 받아야 했고 염색을 하려면 염색설비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런 걸 규제하는 7개의 산업육성법이 있었다. 그게 공업발전법. 거기에 인허가가 200개 정도는 붙어 있었다. 상공부 관리들의 파워가 대단했다. 기업의 목줄을 쥐고 있었다.

이걸 한 방에 날린 분이 한덕수 국무총리다. 당시 직책은 산업정책국장이었다. 상공부의 모든 권한을 내려놨다. 오히려 한 가지 추가했다. 기술 개발 예산을 집어넣을 근거를 마련했다. 그 결과 이듬해인 1987년 약 100억원의 예산이 민간 기업으로 흘러들어 갔다. 지금은 10조원 가까운 예산이 배정된다.

한 총리가 본인의 업적 중 가장 자랑하는 게 이 부분이다. 그는 "그때부터 제조업에 대한 규제가 없어지고 기술 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시작됐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제조 강국이 되는 기틀이 마련됐다"고 자부한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이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했다. 문재인 정부 땐 안 하던 회의가 6년 만에 부활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활로를 찾기 위한 자리였는데 결론은 전(全) 부처의 산업부화다. 환경부도 환경산업 하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정부가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달 말 TV로 생중계까지 하면서 진행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도 그랬다. 윤 대통령은 "국방부는 방위산업부가 돼야 하고, 국토교통부는 인프라 건설 산업부가 돼야 하고,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서비스 산업부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부처가 국가전략산업을 지원하고 촉진하는 산업, 수출 부서라는 생각을 갖고 일할 것을 주문했다.

'돌아온 장고'의 이미지를 지닌 윤 대통령이 산업부를 돌아온 장고로 만들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동생 산업부가 많이 생겨 우리는 원조 왕산업부가 됐다"고 농담을 던진다. 이 장관 역시 산업부의 돌아온 장고 장관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전 세계가 국가 주도의 산업 전략을 추구한다. 반도체, 배터리 등이 국방과 직결되는 기술로 자리매김한 요인이 크지만 자유무역에서 각자도생의 경제전쟁으로 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기업의 향도가 되든지, 아니면 응원부대는 돼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와 기업이 따로 놀면 기업은 경쟁력이 밀리고 국가는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건 불문가지.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고 우리도 불가피하게 여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 부처의 산업부화가 수출 활성화의 요체고 비상시국의 대책임이 분명하다. 거의 한 세대를 뛰어넘어 다시 오일머니를 벌어들여야 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임무가 대한민국에 주어졌다.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된 '코리아 원팀'이 할 일이다.

단, 이 부분에 오해가 있어선 곤란하다. 산업정책의 부활이 핵심이지만 박정희식 국가주의의 부활이어선 안된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비즈니스는 정부 관료보다 기업인이 훨씬 더 잘 알고, 더 잘하고 안목도 넓다. 정부는 인프라 깔아주고, 필요하면 예산 넣어주고, 인재 육성해주고, 규제 풀어 막힌 곳 뚫어주는 것. 모래주머니 벗겨주고 할 수만 있다면 좋은 신발 신겨주는 일. 거기까지다.

왕산업부가 아니라 머슴 산업부가 돼야 한다. 1986년 공업발전법 이전으로 가는 게 아니라 '1986년 공업발전법 시즌2'를 해야 한다.

[손현덕 주필]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