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보호제도’ 유명무실…기관별 특성 맞게 개선해야

송인걸 2022. 11. 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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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가 29일 연 ‘공공부문 감정노동자 실태 및 보호제도 개선 방안 고도화를 위한 포럼’ 참석자들이 감정노동 보호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제공

공공부문의 고객응대 업무자들은 여전히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들 가운데 절반은 감정노동 보호제도가 업무 수행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고 있어 기관별 특성에 맞는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www.cnnodong.net)가 29일 충남 아산 온양제일호텔에서 연 ‘공공부문 감정노동자 실태 및 보호제도 개선 방안 고도화를 위한 포럼’ 주제 발표에 나서 ‘충남도 공공부문 노동자 실태조사’를 공개하고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고 관련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현장의 고충은 여전하다. 고객 응대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증진하고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송민수 연구위원이 밝힌 ‘충남도 공공부문 노동자 실태조사’는 충남도 산하 기관 가운데 감정노동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의료원, 소방, 사회서비스원, 청소년진흥원 등 45개 기관에서 고객응대 업무를 하는 노동자 38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실태조사를 보면, 고객응대 노동자들은 월 4.5회 욕설과 폭언을 듣고 월 4.1회 모욕적 비난·고함에 시달렸다. 또 월 3.6회 무리한 요구를 받고 월 2.6회 위협·괴롭힘도 당하는 등 여전히 악성 민원을 겪고 있었다. 기관별로는 소방에서 욕설·폭언이 월 17.3회로 가장 잦았고 사회서비스원이 월 15.2회로 뒤를 따랐다. 이들은 악성 민원에 대처하는 방법(복수 응답)으로 △개인적으로 알아서 처리(49.5%) △상사에게 도움 요청(41.7%) △동료와 상담(28.9%)한다고 응답했다.

충남 공공부문 고객응대 업무자들의 1개월 평균 악성민원인 응대 횟수.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자료

노동자 대부분은 감정노동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자의 80.7%는 고객을 대할 때 회사의 지침·요구대로 한다고 밝혔고, 86.2%는 고객에게 나의 솔직한 감정을 속인다고 응답했다. 73.4%는 고객을 대할 때 나의 감정도 판다고 느낀다고 밝혔고, 68.8%는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고 답했다. 송 연구위원은 “사회서비스원 노동자들의 감정 부조화와 손상 정도는 1인 응대 시간이 길고 민원인 수가 많은 청소년진흥원과 사회서비스원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감정 부조화와 손상 정도는 삶에 대한 불만족 수준과도 비례했다”고 설명했다.

고객응대 노동자들의 감정노동 보호제도 이용률과 업무 도움 정도도 낮았다. ‘휴게시간·휴게시설·심리상담 등 감정노동 보호제도를 자유롭게 이용하느냐’는 질문에 52.4%(전혀 아니다 18.0%, 거의 아니다 34.4%)가 ‘아니’라고 답해 ‘그렇다’ 17.0%(조금 그렇다 10.7%, 매우 그렇다 6.3%)에 크게 앞섰다. 나머지 30.7%는 ‘보통’이라는 답했다. 보호제도가 업무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15.9%(조금 도움됨 11.5%, 매우 도움됨 4.4%)인 반면, ‘안된다’는 응답은 50.5%(전혀 도움 안 됨 17.2%, 거의 도움 안 됨 33.3%)에 달했다.

충남 공공부문 고객응대 업무자들의 감정노동 보호제도 이용 실태.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자료

이들 가운데 43.3%는 건강문제로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았으며, 코로나19로 업무가 증가해 감정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도 43.4% 가중된 것으로 집계됐다. 도 노동권익센터는 공공부문이 대부분 도민 안전과 직결된 필수 노동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충남의 공공부문 45개 기관에서 감정노동 업무 담당자나 전담 부서가 있는 곳은 28곳(62.2%)이었으며 고객응대 매뉴얼이 있는 기관은 17곳(37.8%),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은 21곳(46.7%)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송민수 연구위원에 이어 양경욱 순천향대 교수가 주제 발표에 나서 ‘해외 및 타 지자체의 감정노동자 보호제도’를 소개하며 보호체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지역사회의 과제를 주제로 이정호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정책국장, 홍춘기 대전노동권익센터장, 전지훈 충남연구원 연구원, 이원복 충남도 노동정책팀장 등이 토론했다.

유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은 “의료원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특성상 업무 중단권 실행이 불가능했고, 재가센터는 돌봄 대상이 고령층이어서 감정노동 강도가 극심했지만 보호제도 보다 금전적 보상이나 휴식을 원했다. 소방은 업무 특성상 장거리 이동이 잦아 고정된 보호제도를 전체 조직에 적용하기 어렵다”며 “충남도에 법적 제도를 정비하고 기관별 특성에 맞게 노동환경을 개선해 감정노동 보호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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