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는 비율 줄이려는 논의, 윤석열 정부 오면서 힘 잃었다"

2022. 11. 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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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윤석열 정부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예방효과는 거의 없으면서 기업의 부담만 키운다는 게 요점이다. 이 법으로 기소된 두성산업은 이 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대폭 수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골자는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과징금 등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가해 이를 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즉, 기존 법이 사업주의 형사처벌에 방점이 찍혔다면 앞으로는 사업주에 경제적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산업안전보건법과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처벌과 감독 위주였던 산업재해 대책을 자율과 예방 위주로 전환하는 방안, 즉 자율규제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이러한 방안이 담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곧 발표할 계획이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이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공동대표도 역임한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자율규제를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두고 "그렇게 한다고 산재사고는 줄어들지 않는다"면서 "만약 자율규제로 산재사고가 줄어들었다면, 진작에 한국 산업현장에서의 산재사고는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과정과 상황, 구조적 원인 등을 모두 무시하고 윤석열 정부는 기업의 의도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 이상윤 대표. ⓒ프레시안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산재가 당장 줄어들길 바란다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것"

프레시안 :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실제 효력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이상윤 : 올해 3분기까지 나온 통계를 보면 작년보다 산재사고 사망자는 조금 더 늘어났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산재사고 사망자가 오히려 더 늘어났다.

프레시안 : 그래서인지 보수언론과 경총에서는 이 법이 효과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상윤 :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사회적 효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산재사망이 당장 줄기를 바란다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와 기능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이상윤 : 진보 진영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일부 있는데, 그건 그 법이 가진 효과나 기능을 무척 크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법의 효과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특정 범죄, 즉 사람이 일하다 죽으면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나쁜 짓이라는 것을 규범화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이전에는 스토킹이 범죄가 아니었다. 스토킹 방지법이 생겨나면서 스토킹은 범죄가 됐다. 물론, 그 법이 제정되기까지는 쉽지 않다. 스토킹이라는 행위에 대한 사회의 도덕적 기준, 윤리의식, 정의감 등이 변화하면서 그 행위를 범죄라고 규정하고 그 결과로 법이 제정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이와 비슷하다.

그 다음으로는 이 법은 인과응보, 즉 이전에는 사람이 일하다 죽어도 사업주가 처벌받지 않았으나 이제는 이를 처벌하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형법이 가지는 효과, 즉 범죄 예방 효과다. 처벌을 통해 범죄를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처벌을 통한 범죄 예방 효과를 두고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상윤 : 아직 많은 논쟁이 있다. 형사법이 가지고 있는 주된 목적은 범죄 예방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에 의해서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것은 살인과 비슷한 중범죄고 이것은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확인시켜준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람이 일하다 죽을 경우, 과거와 다르게 중범죄로 경영 책임자에게 처벌을 강하게 하겠다는 것을 명시화한 법이라고 할 수 있겠나.

이상윤 :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공감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 법은 이를 해주는 것까지의 효과, 딱 거기까지다.

프레시안 : 그러면 그 다음 스텝, 즉 일하다 죽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해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이상윤 : 이는 사회가 다시 숙제로 받아서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 씨 유품. ⓒ공공운수노조

"산재 줄이기 위한 논의,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힘을 잃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논의가 필요한가.

이상윤 : 산업재해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법적 규제, 그리고 이 규제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관리감독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이 두 가지가 산재 사망예방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셈이다. 법적 규제는 아직 보완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큰 틀에서 얼개가 잡혔다. 나머지 이 규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관리감독 제도가 필요하다. 논의를 하려면 이것을 해야 한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에서는 관리감독을 위해서 '산업안전보건청'까지도 고민했던 걸로 알고 있다. 경찰청처럼 산재에 관한 관리감독을 하는 전문 기관이다.

이상윤 : 문재인 정부에서는 근로감독 관련해서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논의가 있었다. 단순히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업재해 예방과 관리를 위해서 어떤 근로 감독 체계를 만들고, 근로감독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정체계를 가져갈 것인가를 논의했다. 그리고 이런 논의는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논의는 힘을 잃어버렸다.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매우 달라졌다. 정부는 처벌 위주의 산업재해 감축에서 벗어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그러면서 관리감독 논의는 뒷전이고 법의 효력에 관한 논쟁이 한창이다.

이상윤 :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공격이 거세다. 보수언론과 경총이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이 법이 실제로 노동자의 죽음을 막고 있는지, 그 효력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프레시안 : 이 법을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겠나.

이상윤 : 그것도 있겠으나, 사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 법은 '그들'을 옥죄는 법이 아니다. 이는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이 법은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고 경영 책임자를 무조건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사망사고가 나더라도 안전장치 미설치 등 인과관계를 따진다. 경영 책임자가 그 노동자의 죽음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됐다는 증거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안전 펜스 미설치 난간에서 떨어져서 죽었다고 치자. 그런데 난간에 안전 펜스를 설치하자고 회사 담당자가 대표에게 결재서류 올렸는데 이를 거부했을 경우, 경영자는 처벌받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경영책임자의 의식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안전 펜스 설치를 하지 않았다는 걸 경영책임자가 알고 있었어야 하고 그로 인한 결과도 예측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안전펜스를 미설치했다고 처벌받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 일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에 도입됐는데, 이 법으로 기소된 사건이 2건 밖에 없다.

이상윤 : 검찰은 기소할 때 재판에서 이길지 판단하고 기소한다. 그런데 자기네들이 법리적으로 검토해 봐도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법적용이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는 검찰이 매우 귀찮은 것도 있다. '기업살인법'이 도입된 영국 검찰만 봐도, 산재 사건은 매우 하기 싫어한다. 들여야 할 노력이 많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이런 것은 압수수색을 해도 잘 나오지 않는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경영계와 보수언론에서는 이 법으로 사업자가 무조건 처벌받는다고 호도하면서 이 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상윤 : 그렇게 일부러 프레임을 만들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다. 본심을 숨기고 애먼 곳에서 시끄럽게 하면서 이목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본심이 무엇인가.

이상윤 : 중대재해처벌법으로는 산업재해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니 기업 자율로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 자율규제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율규제로 산재 줄인다? 기본 전제가 클렸다"

프레시안 : 정리하자면, 현 중대재해처벌법으로는 기업들이 안전 역량을 체계적으로 향상하기보다는 당장의 형사처벌을 피하는 데 급급해졌고 결국, 스스로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의지나 행동이 위축돼 산업재해는 더 늘어났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래서 기업 스스로 규제하는 자율규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 아닌가.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나왔다. 안 되니까 중대재해처벌법이 나온 것이다. 자율규제를 하면 산업재해가 줄어들 수 있나.

이상윤 :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기 위해 서류와 문서를 만들어야 하고, 그로 인해 작업현장은 더욱 복잡해지고 힘들어진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더구나 이 법에서 명시한 안전관리원 배치나 안전설비 설치 등은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논리다. 기업별로 작업현장의 위험요소가 다른데, 천편일률적으로 안전관리원 배치하고 안전설비 설치한다고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필요한 안전 관련해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간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것이다.

프레시안 : 들어보면 나름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다만, 산업현장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안전 규제 관련해서 '노사가 논의해서 결정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가능할까 싶다.

이상윤 : 자율규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산재 사망 노동자는 우리 현장에서 나오면 안 된다'는 가치를 공유하는 게 선결조건이다. 그런데 자율규제를 주장하는 학자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사람 살리는 것에는 노사가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인상이나 직원복지 같은 경우는 노사간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으나 이것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노사간 협력해 공통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기본전제가 틀렸다. 한국의 사업장은 그렇게 상식적이지 않기에 지금까지 산재 사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의 사업장은 안전보다는 이윤을 우선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됐다. 그렇다 보니 안전을 위해 합의할 수 있는 것은 매우 기술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안전모나 안전화를 사용하도록 하는 수준이다.

자율규제, 즉 노사간 합의해서 스스로 안전을 꾀한다면, 정례적으로 회의하고 안전교육 등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재사망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만 보더라도 다단계 하청, 저가 낙찰, 공기 단축, 저숙련 인력 고용, 인력 감축 등 근본적인 문제라고 하는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안전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프레시안 : 하청의 재하청이 이뤄지는 현 산업구조 속에서 노사간 협의를 통해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청 노동자의 목숨줄은 원청에서 가지고 있는데, 대등한 협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상윤 : 사업장 내 모든 행위자들이 똑같은 발언권을 가지고 책상에 앉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만, 사업장의 권력 관계는 전혀 그렇지 않다.

프레시안 : 기업들은 규제 관련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어 가려하고 윤석열 정부는 이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는 상황이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자율규제를 진행하려는 모양새다. 노동부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나오면 다시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감사하다.

[허환주 기자(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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